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8월 5일] 鄭총리의 때늦은 소신발언

지난 7월29일 정운찬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하면서 "후임 총리가 결정될 때까지 최소한의 책무는 수행하겠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언론과 정치권ㆍ관료 모두 '의례적인' 이야기로 치부했다.

그러나 맥없이 물러날 줄로만 알았던 정 총리가 최소한의 책무 이상을 수행하며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마치 잠자던 숲 속의 공주가 마법에서 깨어난 것처럼.


3일 국무회의는 정 총리가 취임 전 보여줬던 소신형 학자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휴일까지 반납하며 야근하는 공무원에게 경의를 표하지만 바쁜 머리에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는 정 총리의 말에 과천의 한 공무원은 "우리 정부의 근본적 한계를 정확히 찔렀다"고 토로했다. 국제금융과 국내금융부처가 분리돼 있는 데 대한 문제제기는 경제관료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아무도 말하지 않던 금기시된 비판이었다. 상근 과학기술 수석과 관련부처가 필요하다는 말은 이명박 정부 구성 당시 '작은 정부' 이슈에만 매몰된 나머지 국가의 먹을거리를 포기했다는 점에 대한 쓴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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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모든 문제를 정 총리가 재임 시절에는 몰랐다가 떠날 때가 되니까 불현듯 깨닫게 된 것일까. 서울대 총장까지 역임한 경제학자 출신인 그가 이들 문제를 몰랐다면 경제학자로서 자질이 없는 것이고 알면서도 입을 다물었다면 그동안 '곡학아세'를 한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가장 큰 책임은 정 총리 자신에게 있다. 이 정도로 건전한 문제의식을 가진 그가 '세종시 특임총리'로 추락한 것은 누구의 강요도 아닌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정 총리 자신은 "현 정부의 지나친 보수화를 막았다고 자부한다"고 말했지만 적어도 기자 눈에 특임총리로서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 흔적은 전혀 띄지 않았다. 정 총리 스스로 선택한 정치인의 길이었지만 단 한번도 스스로의 이슈를 만들어 내부의 반대와 야당의 태클을 뚫고 자신의 색깔을 관철시킬 만한 의지와 뚝심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 총리가 마지막으로 쏟아낸 입바른 소리에 만시지탄을 느낀다. 또 그의 사퇴가 아쉽지도 않다. 하지만 현 정부 시스템과 금융 거버넌스에 대한 본질적 문제제기가 자칫 그의 퇴임과 함께 아무 일 없었던 듯 잊혀질까 봐 그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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