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판사가 쓰는 법이야기] <20>내 얘기 좀 들어주세요

환자로서 의사에게 느꼈던 서운함 잊지않고 재판당사자에 세심한 배려할것


5살 난 딸아이가 아토피를 앓고 있다. 갈수록 심해져서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아이를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닌다. 일단 양방, 그 다음은 한방, 그 다음은 민간요법,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보리라 비장한 마음을 먹고 우선 양방병원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삼성서울병원, 아산병원의 ‘소아 아토피’로 유명하다는 의사를 찾아다니는데, 의사 앞에만 서면 ‘그대 앞에만 서면 ~ 나는 왜 이리 작아지는가~’라는 유행가 가사가 생각난다. 진료실 밖에서는 이번에도 ‘별 대책이 없다’는 얘기를 들을까봐 연신 초조하고, 궁금한 것은 많지만 뒤에 늘어선 환자들과 피곤하고 무표정해 보이는 의사 선생님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다 보면 말문이 쉽게 열리지 않는다. 요새는 아예 ‘이것만은 꼭 물어보고 오리라’ 하고 질문리스트까지 꼬깃꼬깃 접어간다. 환부를 보여주기 위해 옷을 내리며 한 마디, 대수롭지 않게 힐끔 보는 의사를 쳐다보며 또 한마디, 후다닥 아이의 옷을 입히며 다시 한 마디 연거푸 질문을 쏘아댄다. 언제쯤 병원에서 ‘더 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십니까?’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내 아이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의사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환자 한 명당 충분한 진료시간을 낼 수 없는 의료시스템, 의료수가의 문제라는 것을 안다. 나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지만, 매일같이 아토피 환자를 수십 명씩 보는 의사에게는 일상일 텐데, 의사가 ‘이걸 어쩌냐, 정말 안 됐다’고 호들갑을 떨 일도 아니고, 나의 얘기를 한참 들어준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의사는 꼭 필요한 얘기만 콕콕 집어서 하는 것일 테다. “아토피 같군요. 보습이 중요합니다. 약 하루에 2번 바르세요. 3주후에 오세요.” 하지만 할 말을 다하지 못하고, 듣고 싶은 얘기도 다 듣지 못하고 떠밀려 나온다는 생각이 들면 서글프고 억울하기까지 하다. 어느 날, 법원에 온 사람들도 병원에 간 내 심정과 똑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들에게는 너무나 절박한 일생일대의 시련이고, 하고 싶은 얘기, 속이 까맣게 타 들어간 사연이 많을 텐데, 우리 판사들은 늘 시간에 쫓기고, 사건은 밀려 있고, 법리적으로만 보자면 전혀 결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하소연도 있는지라 매번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기는 쉽지 않다. 생각해 보니, 사람들은 병원보다 법원에서 더 답답해 할 것 같다. 환자는 의사 선생님을 코 앞에서라도 볼 수 있고, 그가 듣거나 말거나 속사포처럼 질문들을 던질 수도 있지만 법정은 판사가 듣거나 말거나 맘대로 말할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만나고 싶다고 아무 때나 판사를 찾아갈 수 있는 곳도 아니지 않은가. 만약 당사자들이 자신의 얘기를 다 듣지 않고 법원이 결론을 내린다고 생각한다면, 법원을 신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법원은 현재 구술변론주의를 강화해 재판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당사자의 주장을 더욱 귀담아 듣는 시스템을 정착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사법부의 신뢰회복을 위하여 꼭 필요하다고 본다. 아픈 아이의 엄마로서 병원에서 느꼈던 답답함, 서운함을 잊지 말아야겠다. 공정한 판결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재판 진행에 있어서도 항상 당사자를 세심하게 배려하고 그 처지를 이해하려는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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