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 단기공사채형 문제가 금융시장 전체의 문제로 불거진데는 관련자 모두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원인이었다. 상품을 만들어 판 증권사나 이를 사준 은행,보험등 기관투자가, 수탁자금을 운용한 투신사, 이 모든 과정을 감시. 감독해야 할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등 모두가 도덕적 해이에 빠져 오늘의 상황을 낳았다.먼저 수탁고 경쟁에 내 몰린 증권사는 무리라는 점을 알면서도 시중 실세금리보다 3~4%포인트 높은 3개월미만 단기공사채형 상품을 만들어 판매했다. 금리동향에 따라 장기적으로는 어떻게 되든 일단 수탁고만 늘려놓고 보자는 속셈이었다. 판매사인 증권사와의 관계에서 약자의 위치일 수 밖에 없는 투신(운용)사들은 한편으로는 증권사의 강요에 의해, 다른 한편에서는 수탁고 경쟁이라는 동일한 이유에 의해 무리한 고수익률을 수용했다.
은행, 보험등 자금을 맡긴 기관들 역시 이같은 고수익률 제시가 투신과 증권의 부실을 낳고 악화될 경우는 금융시장 전체의 위기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3개월안에 무슨 일이 있으랴』는 심보로 무더기로 투신권에 단기자금을 맡겼다.
금리인하라는 정책적 목표에 내 몰린 재경부 역시 이같은 사태를 은근히 방조했다. 금감위는 『투신권 구조조정은 당분간 없다』며 총체적인 도덕적 해이를 거들었다.
따라서 문제해결의 첫 원칙은 「부담의 공유」이다. 어느 한쪽의 책임이 아닌 모두의 도덕적 해이에 원인이 있었던 만큼 해결에 따른 부담도 나눠야 한다.
즉 예를 들면 네고수익률이 11%라해도 은행등 수탁자들에게 11%를 모두 지급하지 않고 10%만 지급하는 것이다. 1%포인트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부담이다. 증권사역시 이같은 방식으로 부담을 공유하면 최근 금리상승에 따른 투신권 위기는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그동안 나름의 시장질서로 진행돼 온 네고수익률 체제에 대한 위협일 수 있지만 모두의 공멸위험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검토해 볼 수 있는 방안이다.
보다 근본적인 방법으로는 채권 시가평가를 조기 실시하는 것도 선택대안이다. 채권 시가평가란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채권을 현재와 같이 장부가(표면수익률)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가격대로 평가해 그 수익을 그대로 고객에게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 위기의 근저에는 투신의 단기공사채형 상품이 실적배당 상품임에도 실제로는 확정(네고)금리로 판매된데 원인이 있다. 따라서 이를 원칙대로 채권 시가평가를 통해 실적배당상품으로 만들면 투신사는 금리변동에 따른 위험을 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정 운용수수료만을 받고 고객에게 운용수익률을 지급할 수 있다.
채권 유통시장의 조기발달도 과제이다. 이번 위기의 주요 원인인 미스매치는 채권 유통시장이 미발달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다. 채권 유통시장만 활성화돼 있다면 단기상품에 장기채권을 편입한다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단기상품의 만기에 따라 바로바로 장기채권을 매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딜러브로커 시스템등 채권 유통시장 발달을 위해 현재 재경부와 금감위가 추진중인 프로젝트를 보다 조기에 시행할 필요가 있다.
당장은 시장충격, 금리급등 우려때문에 감독당국이 보류하고 있지만 채권 유통시장이 충분히 발달하기 전까지는 단기상품에 편입되는 장기채권의 만기를 점진적으로 제한할 필요도 있다. 유동성 위기란 바로 판매상품과 운용상품간의 미스매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기존 투신의 부실화과정을 똑같이 밟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기존 대형투신사들은 실적배당상품을 확정배당상품처럼 팔고 이후 주가나 채권값이 떨어져 손실이 발생하면 고객의 신탁자산을 담보로 고유계정에서 자금을 빌려(소위 연계콜) 이를 갚는 과정을 되풀이 했다. 그 결과 투신권은 금감위가 과도한 국민부담을 우려해 손도 못댈 정도의 엄청난 부실을 떠안게 됐다.
이번 사태의 주인공인 신설 투신운용사들에게는 유동성부족위기에 대한 단기적인 「완충역할」을 할 고유계정도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안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