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세계증시 폭락과 국내증시/이필상 고려대 교수(특별기고)

미국의 다우존스지수가 사상최고인 5백50포인트 하락을 기록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우리나라 증권시장은 즉시 주가지수 5백선이 무너지면서 마비상태에 빠졌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가 금융대란에 휘말려 숨이 막히고 있다. 이번 증시파탄은 태국, 필리핀, 홍콩 등 동남아 국가의 금융위기 발생때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경제 체질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 증시는 애써 위기를 부정해 왔으나 미국 증시까지 위협을 받자 맥을 못추고 스스로 쓰러지고 말았다.우리나라 증시의 붕괴는 내부적 원인이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나라 증시가 과도기적인 위기현상을 벗어난다 해도 우리 증시는 계속 위기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증권시장이 붕괴의 수렁에 빠진 원인은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줄을 이어 무너지는 기업부도에 있다. 주가는 경제의 얼굴이며 기업가치의 척도이다. 따라서 규모에 관계없이 무차별적으로 나타나는 기업부도행진이 주가를 떨어뜨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왕좌왕한 정부정책이 증시붕괴를 부채질했다. 겉으로 시장원리를 내세우며 안으로 부실 기업들을 정치적 필요에 따라 처리하는 파행정책이 기업들을 연쇄 부도의 함정으로 밀어넣었다. 증권시장의 붕괴는 산업붕괴와 상호 악순환을 형성한다. 연초 한보그룹을 필두로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등 대기업들이 연이어 쓰러졌다. 급기야 재계 8위인 기아그룹까지 무너지고 쌍방울, 태일정밀, 뉴코아까지 몰락의 위기에 처했다. 실로 살아남을 기업이 없을 정도로 부도의 공포가 크다. 이 가운데 주식시장이 무너짐으로써 기업에는 자본공급의 길이 막혔다. 그러자 기업의 도산은 계속 심화의 길을 걷고 있다. 여기서 기업의 붕괴는 다시 증권시장을 압박한다. 즉 기업 연쇄 붕괴로 인해 주가하락이 가속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결국 우리 증시와 기업들은 서로를 무「뜨리는 악순환의 고리에 걸린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경제의 해외신인도가 급격히 하락하여 외화자금 조달의 길이 거의 막혔다. 대외결제부도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더욱 위험한 것은 외국자본이 국내시장을 이탈하는 것이다. 외국자본이 대거 유출하면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붕괴상태에 빠진다. 현상황에서 경제붕괴를 막으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증권시장부터 살려내야한다. 먼저 통화의 신축적 운용, 외국자본의 적극적인 유입, 기관들의 매수우위유지등 가능한 모든 단기적 조치를 다 취하여 다급한 붕괴를 막아야한다. 그러나 경제가 기업부도의 불안을 씻고 심리적 안정을 회복하는 것이 증권시장의 정상화를 꾀하는 근본적인 길이다. 따라서 정부는 그동안 경제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기아를 비롯한 부실기업들에 대해서 실질적인 해결방안을 시급히 내놔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자금지원을 서둘러야 한다. 이렇게 하여 쓰러지는 기업들과 협력업체들을 살려 경제안정을 회복해야 한다. 물론 기업들도 부실 계열기업과 보유부동산을 정리하고 전문경영인체제를 구축해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자구노력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정부 정책당국자와 각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해 금융공황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증권시장은 미래지향적인 것이다. 따라서 무엇인가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심리적 불안감이 사라지면서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해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정자들의 태도이다. 정책당국자들은 정권말기에 보신을 위해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또 정치권은 집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전투구뿐이다. 이들은 결국 정치와 경제를 모두 쓰러뜨리는 반국민적인 행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본래의 소임을 다하면서 경제에 새로운 희망을 제시할 때 비로소 증권시장은 다시 꿈틀거리고 경제는 새생명을 얻을 수 있다.

관련기사



이필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