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AIG, 한국실정 악용 '잇속 챙기기' 눈총

타결돼도 헐값매각 후유증…나쁜선례 우려'언제까지 끌려다녀야 하나.' 미국 AIG컨소시엄이 현대투자신탁증권 등 현대 계열 금융3사 대자신탁증권 인수를 위해 제시한 트래프트(계약서 초안)의 내용이 이전과 같이 무리한 조건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협상 자체를 근원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나 제일은행을 헐값에 넘겼던 당시와 달리 여건이 나아졌다면 그에 걸맞는 협상력과 결과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현대 금융3사 매각협상 일지 ▲ 2000년 4월 말 : 현대투신 자금인출사태 6월22일 : 현대ㆍAIG 1차 MOU 체결(9,000억원 유치, 현투증권ㆍ운용 경영권 이양) 8월28일 : 현대ㆍAIG 2차 MOU 체결(1조1,000억원 유치, 현대증권 등 금융계열사 경영권 이양) 11월14일 : AIG측 윌버 로스 회장, 이근영 금감위원장 면담(현대투신 손실보전 요구)→현대ㆍAIG간 협상 사실상 결렬 ▲ 2001년 1월31일 : AIG, 정부와 현대투신에 공동출자 제의 8월3일 : 금감위, "AIG, 현대증권 신주발행방식으로 경영권 인수추진" 8월8일 : AIG, 정부에 다른 출자방식 제안(8월11일 MOU 체결계획 무산) 8월23일 : 정부ㆍAIG MOU 체결(AIG 1조1,000억원, 정부 9,000억원 현투증권 공동출자) 8월24일 : AIG, 8,940원 책정된 현대증권 신주인수가격 7,000원 하향 조정 요구, 현대증권 수용 9월11일 : AIG, 현대증권 5개항 추가 요구하며 협상 중단 12월 초 : AIG 일부 협상조건 철회 이후 협상재개 요구, 실사착수 12월31일 : MOU 유효기간 만료 정부는 AIG의 요구사항을 하나하나 검토, 무리한 조건은 수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연말까지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해야 한다는 일정 때문에 과연 자신 있게 협상에 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 한국현실 악용한 AIG의 협상태도 그동안 AIG와 현대에 이어 정부가 벌이고 있는 협상과정을 보면 '이렇게 해가면서까지 팔아야 하나'는 지적에 수긍이 간다. 무엇보다 너무 자주 말을 바꿨다. 현투증권으로부터 협상권을 이어받은 금감위가 AIG와 MOU를 체결한 것은 지난 8월23일. 그러나 AIG는 다음날인 24일 8,940원에 인수하기로 했던 현대증권 신주인수권을 7,000원으로 깎아주지 않으면 협상을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당시 8,940원은 국내 신주발행가 산정기준에 따라 계산된 것이었지만 AIG는 국내법까지 무시했다. 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미국 테러사태의 영향으로 9월12일 현대증권 가격이 6,890원으로 떨어지자 이를 빌미로 지난달 23일 5개 사항을 추가로 요구했다. 그것은 ①현대증권 배당률 7%로 인상 ②우선주의 보통주 전환시기 1년으로 단축 ③투자원금 5년 후 상환할 권리 부여 ④현대증권을 통한 현투증권 재출자금에 대한 콜옵션 부여 ⑤AIG 보유 우선주에 대해 보통주 의결권 부여 등이다. 이후 AIG는 ①과 ②를 철회하고, ②조건을 아예 7,000원에 보통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대증권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고 AIG도 협상을 중단했다. 그러나 AIG는 현대증권 주가가 다시 가파르게 오르자 일부 조건을 철회하겠다며 다시 협상을 시작했다. 잇속이 있으면 달려들고 손해가 난다 싶으면 약속을 어기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 타결돼도, 깨져도 골치 AIG가 요구조건을 많이 완화했지만 이 같은 조건에 협상이 타결된다 해도 문제다. 우선 우선주를 아예 보통주로 발행해주고 발행가격도 우선주와 같은 7,000원에 해달라는 대목이다. 물론 시한인 올해 말에 협상이 타결돼 AIG가 1조1,000억원을 투입하면 일단 금융시장의 뇌관 하나가 제거된다. 정부가 협상시한을 못박으면서 AIG를 압박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배경에서다. 그러나 그럴 경우 세계 주식시장에서 가장 활기를 띠고 있는 한국의 주가는 더욱 뛸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협상이 깨져도 골치다.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한 우선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대외신인도가 떨어질 수 있다. 국내사정을 제대로 모르는 해외 언론들은 한국의 금융시장이 다시 어려움에 봉착됐다고 보도할 것이고 그러면 어렵사리 회생한 주식시장과 현대증권의 주가가 난관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래저래 골치아플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 다른 해결방안은 없나 금융시장의 뇌관 중 하나로 꼽혀온 현대그룹 금융3사 매각은 사실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가운데 하나를 제거하는 것이다. 상승세를 타던 주식시장과 전반적인 경제여건에 또 다른 기폭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AIG의 무리한 요구를 따라가는 협상이 아니라 주도하는 협상으로 전환시키지 않는 한 서울은행, 대우차, 공적자금이 투입된 다른 금융기관의 매각협상에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타결에 대한 기대감 못지않게 크다. 'AIG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경우 국회 청문회감'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정부도 타결이 무산될 가능성에 대비해 일단 ▦새로운 인수자 물색 ▦공적자금 투입 ▦파산(현투 자산을 한투와 대투로 이전) 등 3가지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 하나 쉽지 않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타결될 경우 '졸속 협상' '헐값 매각' 논란이 나오고 지연된다면 '개혁의지 후퇴'라는 욕을 먹게 돼 있다"며 난처한 입장을 설명했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이 같은 처지를 악용하려는 AIG의 상술과 '연말까지 협상을 매듭진다고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된 사안은 해를 넘기기 어렵다'는 정부조직 특유의 '성과주의 행정'이 맞물리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얻는 것도 없이 협상이 끝나버릴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연말로 못박힌 시한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유연하고 자신 있게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를 넘기더라도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가라는 주문이다. 정승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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