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6월 22일] 아직도 벽은 높다

지난 17일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아르헨티나와 월드컵 예선 2차전을 갖기 전과 후의 한국 축구에 대한 평가는 사뭇 다르다. 경기 시작 전 서울시청 광장과 영동대로를 붉은 물결로 가득 메운 거리응원단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한국 축구의 진일보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2004년 유럽컵 우승팀이자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3위인 그리스를 통쾌하게 물리친 한국 축구대표팀은 국민의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다. 선수들은 즐기면서 경기를 풀어나갔고 우리 축구팀의 대표주자인 박지성은 승부사의 기질을 충분히 발휘했다. 문전처리 미숙과 마구잡이로 지르는 중거리 슛 남발이라는 한국 축구의 고질을 말끔히 씻어냈다. 마치 유럽 프리미엄 리그를 보는 기분이었다. 아르헨티나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실력보다 앞선 자신감 하지만 이 같은 흥분은 그로부터 2시간 후 여지없이 무너졌다. 리오넬 메시라는 아르헨티나의 걸출한 스타는 명불허전이라는 말에 걸맞게 한국 진영을 교란시켰고 우리는 큰 점수차이로 경기를 내줬다. 24년 전 월드컵에서 패한 아르헨티나를 이번에는 제압하고 싶은 게 모두의 바람이었지만 아르헨티나의 벽은 그래도 높았다. 사실 대한민국 축구는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진출의 대업을 이뤄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나 당시 선수들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진정한 4강은 분명 아니었다. 홈 어드벤티지를 충분히 활용(?)했고 많은 해외언론들이 이를 비난했다. 이후 연속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실력은 갖췄지만 본선에서 16강의 벽을 허물지는 못했다. 바로 한국 축구의 현주소다. 이번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곳곳의 축구 경기장을 둘러싼 광고판에는 현대ㆍ기아자동차가 자리 잡고 있다. 월드컵 공식 후원기업인 덕에 지구촌 곳곳의 시청자들이 부지불식 중 현대ㆍ기아차를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차도 우리 축구팀처럼 견고한 벽을 마주 보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국 자동차가 세계 자동차시장의 주력으로 부상했다고 국내 매체뿐 아니라 해외언론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 시장에서의 승승장구뿐 아니라 유럽ㆍ중동ㆍ아프리카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같은 성과는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서 나타난 환율효과와 보다 저렴한 차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인식전환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너럴모터스(GM)의 몰락, 미국의 견제심리가 작용한 도요타의 리콜 사태도 톡톡히 한몫 했다. 도요타의 벽, 아직 건실 하지만 도요타나 GM의 벽은 아직도 높다. 현대차의 품질이 도요타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거의 없다. 현대차가 과거보다는 품질ㆍ마케팅 등에서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도요타의 벽을 넘기에는 역부족이다. 최근 리콜 사태가 잠잠해지면서 도요타가 다시 명성을 찾고 있다. 글로벌 시장뿐 아니라 국내 시장까지 잠식하기 시작하면서 파워는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위협적일 수 있다. 반도체ㆍ디스플레이ㆍ휴대폰ㆍTV 등 올 들어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산업도 마찬가지다. 이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은 선진국들이 막아놓은 벽을 허물고 세계 최고로 진입했지만 그들은 또 다른 벽을 만들고 있다. 애플이나 구글 등이 바로 그 주역이다. 아이폰ㆍ아이패드 부품을 대부분 삼성ㆍLG에서 가져온다는 것은 사실 그리 반가운 얘기는 아니다. 부품업체들은 수시로 바뀔 수 있다. 그들은 이미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승부수를 던지면서 또 하나의 벽을 만들고 있다. 더욱이 경제전쟁은 월드컵처럼 ‘토너먼트’가 아니라 계속되는 ‘리그전’이다. 리그전에서의 벽은 토너먼트보다 훨씬 높고 튼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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