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채권단도 빚깎는데 나라가 외면"

■ 조세채권이 부실기업회생 발목국세청 "전액회수" 재경부 "이자감면" 부처이견 조세채권이 부실기업의 회생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법규체계가 얼마나 허술하고 행정체계가 경직적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당장 (주)한보 매각 등 5년 여를 끌어온 구조조정이 막바지 단계에서 조세채권에 막혀 성사가 불투명해졌다. 비슷한 사안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렇다 할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심혈을 기울인 통합도산법에도 조세채권에 대한 내용은 반영되지 않은 상태다. 눈앞에 닥친 한보철강·코오롱 TNS 등은 물론 법체계 미비로 앞으로 수년간 똑같은 갈등과 혼선이 반복될 가능성도 크다. ▶ '전액징수' 대 '깎아달라' 국세청과 채권단, 당사자인 기업간 갈등은 한마디로 밀린 세금 전액을 바아내겠다는 것과 깎아달라는 요구의 대립이다. 문제는 첨례하게 맞서는 양자의 입장이 제각각 당위성을 갖고 있다는 점. '조세형평성'이라는 국세행정 원칙에 비춰 세금을 한푼이라도 더 받아낸다는 국세청의 입장이 그렇고 다른 채권단은 다 탕감해주는데 유독 국가기관만 제외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채권단의 주장이 그렇다. 그래서 합의점을 찾기가 더욱 어렵다. ▶ 규정없어 공멸할 판 다만 현실적으로 주판알을 튕겨보면 '공생이냐 공멸이냐'의 선택으로도 볼 수 있다. (주) 한보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분할매각될 (주)한보의 전체 매각가격은 1,497억원. 조세채권은 1,147억원에 이른다. 채권단의 입장에서는 1,000원을 받아 766원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처지다. 때문에 채권단은 절충안을 내놓았다. 조세채권을 12년동안 분할상환할 경우 현재 환산가격 630억원을 납부하든지 아니면 오는 2014년에 가서 전액을 한꺼번에 내든지 택일하게 해달라는 것. 22일까지 수용 여부를 답해달라는 추신도 곁들였다. 채권단의 이런 요구에는 '세금을 모두 납부하느니 아예 파산으로 가는 게 낫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파산으로 갈 경우 조세채권으로 돌아갈 금액은 190억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파산될 경우 결국 징세액이 적어진다는 점에서 채권단의 요구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선례도 규정도 없어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규정이 없어 공멸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 비슷한 사례 줄이어 한보철강도 같은 길을 걷게 될 전망이다. 전체 매각대금 3억 7,700만달러에서 조세채권이 차지하는 금액(2,350억원)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 일각에서는 조세채권 문제로 인해 이달 말로 예정된 본계약이 어렵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지난 8월 23일 법정관리에 들어간 코오롱TNS도 마찬가지 케이스 법원이 조세채권으로 확정한 금액이 230억원이지만 부채(1,963억원)가 자산(1,761억원)보다 많아 설령 원매자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빚을 빼면 남는게 없는 상태다. ▶ 정부부처간 정책조율 필요 상황이 이쯤되자 재정경제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가할인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 현가할인이란 나중에 납부할 것을 현시점에서 일괄납부할 경우 해당 기간만큼의 이자등을 감액해주는 것으로 채권단에서도 도입을 요구하고 있는 사안이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회생대상인 기업이 세금의 납부유예를 받아 오랫동안 나눠서 내는 것과 현가할인하는 경우가 조세수입 면에서는 동일한 효과를 낳는다는 판단에 따라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징세당국인 국세청의 입장은 또 다르다. 제도 도입의 취지는 수긍할 수 있으나 현가할인에 따른 당기의 징세감소분을 처리할 규정이 마땅하지않기 때문이다. 정부부처들이 상황은 똑같이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각각의 입장차로 뾰족한 대안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부처와 채권단, 부실기업과 인수회사등의 이해가 물리고 물린 조세채권 문제는 근원적으로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내년 중반부터 시행될 예정인 통합도산법에도 규정이 미비한 탓이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통합도산법에 조세채권의 손실처리와 관련된 내용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수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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