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향토기업인] 이강신 영진공사 사장

영진공사는 항만하역은 물론 해사채취 및 세척과 중동 바레인 항만 및 국제공항 지상조업을 하며 국내 종업원 150명과 해외(바레인)종사자 500명을 둔 선진 종합물류회사로 발돋음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516억원.『인천이 항만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우리 회사도 항만의 역사를 같이한 기업이기에 이곳 인천에서 흥망성쇄하는 기업으로 남을 것입니다』 인천항 하역의 간판업체인 영진공사 이강신 사장은 2세 경영인이지만 인천토박이로 애향심이 누구보다도 강한 향토기업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180CM의 휜칠한 키에 미남형인 李사장의 기업관은 지난해 작고한 창업주 故 이기성(李起成)회장의 영향 때문. 『기업이 커질수록 공익에 우선을 두고 인천에서 뿌리를 계속 내리라』는 부친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 자식의 도리가 아니겠냐고 그는 반문한다. 李사장은 87년, 수백명의 한국인 종업원들이 데모를 일으키는 등 회사가 어려울 때 본사를 서울로 옮 는 일부 의견에 부친 李회장은 『어렵다고 기업을 옮기는 것은 장사꾼이지 기업가가 아니다. 인천에 내 뼈를 묻도록 해달라』는 말씀이 귀에 생생하다고 전했다. 그는 고 李회장의 차남으로 인천고를 거쳐 74년 한양대 경영학과를 졸업, 가업을 잇기 위해 77년 영진공사에 입사했다. 당시 중동 오일쇼크 등으로 인해 회사는 참 어려운 시기여서 중동 관문인 바레인 진출을 꾀하고 있을 때다. 그는 곧바로 바레인으로 건너가 바레인 항만하역과 공항 지상조업권의 국제입찰을 따는 등 어려운 시기를 넘겼다. 그후 12년간 바레인에 있으면서 국제신뢰를 쌓고 해외사업의 발판을 굳히는데 큰 몫을 해냈다. 영진공사는 중동 걸프전때 바레인에서 유일하게 철수를 하지 않고 끝까지 남아 하역작업을 수행한 업체로서 이 나라 국왕으로 부터 대단한 신뢰를 받은 것이 바레인의 조업권을 지금까지 독점하고 있는 계기가 됐다고. 선친은 자신의 회사보다 인천발전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기업인으로 인천상공회의소 회장을 2대에 걸쳐 역임했고 인천항만운송협회장때 수출입화물유치에 앞장섰으며 부두운영회사제도입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의 동탑산업훈장을 받는 등 지금도 인천인의 사랑을 받는 인천의 향토 기업인으로 남아있다. 영진공사는 78년 영진탱크터미널㈜도 설립, 액체화물의 하역 및 보관업에도 진출했고 82년 인천 남항일대에 1만5,000평 규모의 보세장치장을 개설, 일반 수출입화물을 보관할수 있도록 하는 등 일관성 있는 화물수출입 하역작업을 정착시킨 인천항만의 선두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얼마전부터 인천항주변의 주거개발로 화물을 항구에서 멀리 떨어진 야적장으로 이송해야 하는 등 물류비상승이 발생하고 인천항은 고철, 원목등 원자재 화물이 주종을 이뤄 분진때문에 방진막을 설치해야 하는 등 하역업체들의 어려움이 많다』 그는 항만의 활성화와 포트세일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북항 등 신항만이 시급히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92년부터 일찍이 구조조정을 시작했던 덕분에 IMF의 불황에서 견딜수 있었다』고 전한 李사장은 『특히 향토기업은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공동체의식을 갖고 무모한 몸집 불리기 보다는 축적된 이익을 바탕으로 시설 및 장비에 재투자해 서비스의 질을 높여나가야 한다』는 기업관도 피력했다. 인천=김인완기자IY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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