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8월 19일] 산업계에 레임덕은 없다

임기 만료를 앞둔 공직자를 '절름발이 오리'에 비유한 말이 '레임덕(lame duck)'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이 5년 단임제로 운영되나 보니 임기가 절반 정도 지나면 레임덕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곤 한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레임덕'이라는 단어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단체가 있다. 다름 아닌 산업계가 그중 하나다. 얼마 전 만난 재계 고위임원은 딱 잘라 "산업계에 대통령 레임덕은 없다. 임기 만료가 바로 코앞에 닥쳐도 우리(산업계)에게 정치권력은 항상 무서운 존재"라고 말했다.


정치권력에 대한 산업계의 두려움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커졌다. 삼성전자ㆍLG전자ㆍ현대자동차ㆍSK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덩치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워낙 규모가 커지다 보니 회사를 완벽히 관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사고(?)가 터질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그만큼 정치권력이 특정 기업의 숨통을 조이려고 마음 먹으면 예전보다 단초를 찾는 것이 더 쉬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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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에 몸을 담고 산업계로 자리를 옮긴 전 고위공무원은 "막상 기업인이 돼보니 정치권력이 무섭다는 것을 느낀다"며 "기업이 규모가 커지고, 영위하는 사업분야가 다양해지다 보니 예전보다 더 정치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요즘 핫 이슈로 부상한 대ㆍ중소 상생은 이 같은 현실을 잘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싶다. 상생협력을 위해 대기업이 노력해야 하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등 여러 곳에서 제도적ㆍ법적 장치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 말 한다미에 마치 기업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이렇다 보니 산업계에는 '상생 스트레스'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대통령이 언급했으니 대책을 안 내놓을 수 없다. 그렇다고 대책을 잘못 내놓으면 오히려 욕을 먹는다. 대책을 내는 것 자체가 자칫 '그간 상생협력에 소홀했다는 것'을 스스로 천명하는 계기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몇몇 기업이 발표한 상생대책은 이 같은 고민이 만들어낸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기여는 굳이 대통령의 발언이 아니더라도 기업이 스스로 느끼고 있다. 사회적 책임과 기여에 소홀한 기업에 대해 국제 사회가 불이익을 주자는 국제협약도 곧 시행을 앞두고 있다. '산업계도 레임덕이라는 사치를 누려봤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라는 재계 한 고위임원의 발언이 새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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