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아직 멀었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주력계열사인 삼성전자를 채찍질했다.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절박감은 17년 전 프랑크푸르트에서 보여준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전 회장은 10일 CES 2010 전시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삼성전자가 신수종 사업 준비를 잘 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을 받고 "아이고, 턱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아직도 멀었다"고 단언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0조원(매출)-10조원(영업이익) 클럽을 국내 최초로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도 이 전 회장은 "멀었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10년 전에 여기 삼성(부스)이 지금의 5분의1 크기였다. 구멍가게 같았다. 까딱 잘못하면 삼성도 (다시) 그렇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고라는 자만심에 안주하기보다 항상 미래를 쳐다봐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그만의 경영철학이다.
이 전 회장은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후 지난 1993년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신경영을 공표한다. 그가 회고한 당시 상황은 이랬다.
"삼성 직원들은 '내가 제일'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위기감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1992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불면증에 시달렸다. 체중이 10㎏ 이상 줄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삼성 전체가 사그라질 것 같은 절박한 심정이었다."
이후 "마누라와 자식 외에는 다 바꾸라"는 말로 요약되는 결론을 내놓으며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 그룹의 체질 개선에 착수한다. 품질을 강화하고 전혀 다른 개념의 신제품을 내놓는 등 초일류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삼성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는 여전히 미래 사업에 대한 철저한 대비만이 기업이 생존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있다. 이 전 회장은 향후 중점 추진사업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른다"고 웃은 뒤 "나도 연구해야 한다. 각 계열사의 R&D팀도 공부를 해서 몇 년이 걸려야 한다"고 긴장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