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이민정책 새 틀 짜라] <3> 외국 사례서 배운다

싱가포르 이민제한 완화 15년새 인구 100만 늘어

美, 일정요건 갖춘 불법체류자에 추방유예·직업훈련 개혁안 추진

폐쇄적 일본은 이민정책 실패… 산업역동성 둔화 등 반면교사


서울 마포구에 사는 이지원(37·가명)씨는 최근 동네 맞벌이 엄마 모임에 나갔다가 솔깃한 이야기를 들었다. 강남에서 유행하는 필리핀 출신 육아도우미를 고용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필리핀 출신 도우미는 일명 '조선족 이모'보다 나이도 젊고 영어도 할 수 있어 인기라는 전언에 이씨는 "가격대만 맞으면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한 것 같다"고 했다. 입주도우미 수요가 늘면서 중국 동포 도우미의 월급이 최소 150만원 이상으로 올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직장맘'들의 하소연이다.

문제는 필리핀 출신 도우미 채용이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관계법령상 외국인이 가사도우미로 일하기 위해서는 재외동포(F-4비자)나 결혼이민자(F-6비자) 등 까다로운 요건을 갖춰야 해 필리핀 여성이 한국 남성과 결혼하지 않는 이상 이 비자를 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한국에서 일하는 필리핀 도우미 대다수는 단기비자로 입국했다가 불법체류자로 전락한 이들이다. 직장과 가정의 간극을 메우고자 하는 분명한 수요가 있는데 제도가 이를 뒷받침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싱가포르·홍콩·대만 등이 가사도우미 비자를 발급하는 것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정부 역시 이 같은 요구를 인지하고 있지만 특별한 정책적 대안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이민 개방에 소극적인 한국과 달리 대다수 선진국은 이민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민을 통한 인적자원 확보가 경제성장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을 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불법체류자라 할지라도 일정 요건을 갖췄을 경우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추방을 유예하는 '이민개혁안'을 지난해 마련해 야당인 공화당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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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오바마 대통령의 '뚝심'은 초고령 사회 진입을 목전에 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유독 빨라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한국은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중이 7%인 고령화 사회에서 20%의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데 약 17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속도는 프랑스(115년), 미국(71년), 영국(47년) 등 선진국보다 매우 짧은 것으로 그만큼 '고령화 충격'에 대비할 시간을 벌 틈도 없다는 얘기다. 이들 국가는 이 시기에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펼쳐 선진국 진입의 마지막 고비를 넘었다.

우리와 가까운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이민정책의 모범국가로 꼽힌다. 싱가포르 정부는 인구 고령화에 대응해 지난 1980년대부터 대대적인 출산장려책을 펼쳤다. 하지만 정부의 당근에도 출산율이 높아질 움직임이 없자 2000년대 이후부터는 이민제한 완화책을 펼쳐 인구를 100만명 이상 늘리는 데 성공했다. 가사도우미 비자를 받고 들어온 인력만도 50만명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2013년 현재 싱가포르의 전체 인구 중 외국인 비율은 42.9%로 엄격한 법 집행을 통해 불법 이민 취업자나 그 고용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가며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다. 김진용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은 "싱가포르의 경우 정부 주도로 우수인재 유치 전담기관을 설립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해 인력 유치에 성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우리와 경제구조 및 폐쇄적인 사고방식 등이 가장 비슷한 일본의 실패 사례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역시 해외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2008년 범부처종합대책을 수립하는가 하면 2012년에는 영주권제도를 고쳐 필요기간을 기존 10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특유의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성과관리 등으로 사실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이 지금 획기적인 이민정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일본과 같이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신종호 경기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은 결과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소극적 이민정책을 고수하는 탓에 나라 전체의 산업 역동성이 둔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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