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계의 사설] 미국의 피해망상

파이낸셜타임스 11월 28일자

미국은 두 팔 벌려 해외 이민자를 끌어안는 것을 국가적인 자산이자 신화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최근 아시아 이민자가 늘면서 외국인 혐오증(Xenophobia) 확산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지난 88년 미국 정부는 2차대전 당시 12만명의 일본 이민자들을 서부 해안의 임시 수용소에 억류했던 사실에 대해 공식 사과한 바 있다. 그때 일본계 이민자 중 65%가 미국 시민권자였고 그들의 자녀가 미국 군대에서 복무 중이었다. 과거 80년대에도 일본 자본이 미국에 흘러들어와 록펠러 센터, 페블 비치, 유니버셜 스튜디오 등을 먹어치우자 미 의회가 나서서 ‘경제적인 국가 안보’를 운운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만들어진 법령은 비밀스러운 위원회가 외국인 투자자들의 미국 기업 인수로 잠재적인 안보 침해 가능성은 없는지 여부를 면밀히 조사하도록 강제했다. 이상하게도 90년대에 유럽 자본이 미국에서 크라이슬러와 아모코, 페인웨버 등을 집어 삼킬 때에는 이런 식의 분노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90년대 후반부터 대내외적으로 ‘중국’이 미국에 위협적인 존재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5년, 중국에 대한 미국의 피해망상증은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 최근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미국의 석유회사 유노컬을 인수하겠다고 나서자 미 의회는 80년대 일본에 했던 것처럼 중국에 총공세를 펼쳤다. 결국 CNOOC는 미국 내 정치적 압력에 못 이겨 인수를 포기했다. 그러나 지금도 CNOOC가 유노컬을 인수할 경우 안보가 불안해질 수 있다는 의회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 상무부는 급기야 중국인 연구자 유입에 대해 법적인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심지어 미국 시민권이나 미국 동맹국의 영주권을 획득한 사람이라도 중국 태생이면 미국에서 첨단 산업과 관련된 연구 허가를 받는 것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그 이유는 또 다시 국가 안보를 위해서다. 산업스파이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단순히 특정 국가를 겨냥하는 법적 제재는 무모할 뿐 아니라 비생산적이다. 중국에 대한 피해망상증과 외국인 혐오증은 오늘날 미국이 존재할 수 있었던 원동력, 즉 이민자에 대한 포용주의를 손상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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