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홍현종의 경제 프리즘] 달러만 쳐다보다…


“유로 창조는 2차 세계대전이후 경제 복구 시스템의 핵심이 됐던 달러의 통화 패권을 흔들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미국 통화당국의 심정은 복잡하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유로화 출범 당시 미국의 입장을 표현한 말이다. 덧붙여 신문은 미국내 제기된 유로 회의론이 유로 경계론으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금융사에 한 획을 그으며 지난 1999년 유럽경제통화동맹(EMU)으로 출발한 유로화에 대해 미국이 보인 반응은 사실 애매했다. “유럽 탄생의 영향이나 역할에 관해 예측하기란 어렵다. 다만 통화 통합으로 유럽이 이익을 누린다면 미국도 나쁘지 않을 것” 로렌스 서머스 당시 재무장관의 유로에 대한 발언 속에는 그저 통합을 마지 못해 용인하는 시큰둥한 정도의 뉴앙스가 담겨 있다. 유로 출범 7년. 냉전 시절 전략적 파트너로서 협력했던 미국과 유럽은 냉전 종식, 그리고 특히 미국 제일주의를 밀어붙이는 부시 정권-좌파 ‘시장 사회주의’의 통합 유럽 시대를 거치며 과거와는 다른 지정학적 관계를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이는 경제면에서 과거보다 미묘한 국제 통화 체계를 만드는 구조적 원인이기도 하다. ▦‘차이니스 달러’를 앞세워 위안화의 세계화를 꿈꾸는 중국의 부상은 미-유럽 구도를 전략적으로 더 복잡하게 엮는 추가적 요소다. 본토와 대만 홍콩 마카오 등 중국권 공통 통화를 구축한 뒤 10년내 아시아 공통 통화로 격상시키고, 다시 이를 넘어 세계 통화로의 꿍꿍이를 보이고 있는 중국에게 달러의 독주는 제동을 걸어야 할 대상이다. 중국 인민은행이 외화 준비금을 지속적으로 달러에서 유로로 바꿔오고 있는 점은 바로 이 같은 목표를 위한 행동 지침의 한 사례다. 지난 98년 달러가 60%를 훨씬 넘던 중국의 외환 준비금은 매년 유로 비중을 높여 종국에는 달러 40%,유로 40%, 엔 20%까지 가겠다는 것이 중국 국가 발전위원회가 밝힌 계획이다. 차이니스 달러 ‘세계 화폐화’의 원년을 오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으로 잡고 달러의 일극(一極) 지배를 견제하기 위해 유로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중국의 행보는 흥미로운 대목이다. 고통의 지난 10년 통화당국의 전략적 지원 부재 속 국제 통화로서의 지위에서 밀려 난 일본도 꿈을 접었다고 보기는 이르다. 거기에 자칫 판이 깨져버릴 지 모를 지난 97년과 같은 통화 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각국 통화가 달러에만 연동돼있는 지금 같은 체제는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 일본의 기본 입장이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고 엔의 부활을 이뤄내려는 일본도 결국은 중국처럼 대망을 위해 유로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형국이다. ▦달러의 절대 강자의 지위 속에 유로와 엔, 거기에 위안까지 뛰어들어 그려내는 통화 열국지(列國志). 다가올 세상에도 달러 독주의 시대가 마냥 이어질 수만은 없을 근거는 여러 면에 걸쳐 있다. 과정 과정 ‘NO.2’간 대립도 치열하지만 크게는 달러를 둘러싸고 유로와 엔ㆍ위안이 합종연횡하며 전략적인 동반자 관계를 펼쳐가고 있다. 한마디로 “쫓기는 달러, 쫓는 유로ㆍ위안”의 구도다. 이 같은 상황 속 어느 나라가 됐던 달러에만 목을 매는 통화 정책은 시대착오적이란 지적을 면키 어렵다. 수출로 먹고 사는 대한민국에게 국제 환율 시장 변화는 자고 나면 제일 먼저 챙겨야 할 글로벌 트렌드다. 국제환율이 흔들릴 때마다 원화 환율이 더 크게 흔들리는 이유는 우선은 자국 통화의 결제 비중이 낮은 때문이다. 그리고 외화결제 수요가 달러화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 문제다. 환율불안을 완화하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원화의 강력한 국제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시급한 건 결제 통화의 달러화 편중 현상을 지금보다 더 확실하게 시정해 가는 일이다. 달러만 바라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험한 꼴 당하기 전에 말이다. 환율전(戰)의 패배는 국가 전체 경제의 패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때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