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국세청 14층 회의실에서 긴급 소집된 지방국세청장회의.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된 이날 회의에서 한상률 국세청 차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국궁진력(鞠躬盡力)’이라는 사자성어를 꺼냈다. 밤 늦게까지 고민하다 생각해냈다는 이 말은 ‘섬기는 마음으로 몸을 낮춰 온 힘을 다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이어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 죄송하다”며 세번가량 머리를 수그렸다. 참석한 지방청장들도 회의 내내 굳은 표정이 떠나지 않았다. 회의를 끝내고 나온 모 지방청장의 말은 현재의 국세청 위기감을 이렇게 전했다.
“일선 세무서 직원들로부터 국민들을 대하기 겁난다는 원성이 쏟아지고 있다. 일선 직원 보기가 두렵다. 20년 넘게 일을 했지만 이번처럼 국세청이 조직 전체 차원에서 위기를 맞은 적은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검찰과 더불어 4대 권력기관으로 불리는 국세청을 진두지휘하는 고위간부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얼굴을 들지 못하는 모습은 국세청의 현 상황을 제대로 표현해주고 있다.
국세청의 치욕은 비단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1966년 1대 이낙선씨부터 전군표 전 청장에 이르기 까지 국세청을 거쳐간 수장은 15명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국세청은 적잖은 부침을 겪었다. 권력기관의 시녀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고 불과 몇 해 전에는 세풍이라는 정치적 사건에 연류되기도 했다. 이 이면에는 국세청이 주요 권력기관이다 보니 군 출신 등 당시 대통령과 깊은 관계를 맺은 인물이 다수를 차지했던 것이 한몫을 차지했다.
현실로 눈을 돌려보자. 전 전 청장 구속에 따라 후임 인선을 놓고 여러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선도 코앞이다. 때문에 이번 청장은 자칫 몇 개월이라는 최단명 기록을 세울 여지도 다분한 것이 현실이다.
한 가지 고려할 것은 몇 개월 청장이든 새 국세청장에게는 조직원들을 추스르며 뼈를 깎는 자기 반성을 이끌어내야 하는 막중한 책무가 요구되고 있다. 새 청장 인선은 정치적 배려보다는 이 점이 강조돼야 할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