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파이낸셜 포커스] 무섭게 변하는 '농협금융'… 뭐가 어떻게 달라졌길래

최적의 포트폴리오·의사결정 역동성↑…

부실 공룡서 '스마트 금융그룹'으로 변신

우투證 인수·복합점포 설립 등 임종룡 소프트 리더십 빛발해

은행·非은행 실적 폭발적 상승

/=연합뉴스


최근 만난 금융지주 고위관계자는 올 한 해 가장 주목해야 할 곳으로 농협금융그룹을 지목했다. 그는 "상명하복 문화가 강하고 변화속도가 느린 농협금융이 금융사 최초로 복합점포를 낸 것은 일종의 '사건'"이라며 "4대 금융지주 체제에 가려져 있었지만 농협금융은 비은행 부문(우리투자증권·NH농협생명)에서 지주계열 1등 금융사를 보유할 정도로 짜임새가 몰라보게 좋아졌다"고 전했다. 지난해부터 눈에 띄는 성장을 거듭하는 농협생명 등 2금융권 계열사들이 업계 전반을 흔들어 놓더니 지난 연말부터는 경영 전반의 의사 결정 속도와 전략 자체에 참신성까지 갖춰가고 있다.

사실 농협금융에는 그동안 '몸집만 비대한 부실 공룡'이라는 꼬리말이 따라붙었다. 금융산업 격변 속에서도 유독 변화가 굼떴다는 얘기다. 영업기반인 농촌과의 연계성 탓인지 '촌스럽다' '느리다'와 같은 편견도 피할 수 없었다.


그런 농협금융이 국내 금융산업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변화의 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농협금융의 드라마틱한 변신은 공교롭게도 임종룡 회장 취임 때부터 시작됐다. 임 회장은 전임자로부터 '제갈공명이 와도 바뀌지 않는다'란 박한 평가를 받았던 농협금융을 △빠른 의사결정 △직원 간 소통 극대화 △농협중앙회와의 원활한 관계 등으로 대변되는 소프트 리더십을 무기 삼아 잠든 공룡을 일으켜 세우는 데 성공했다.

임 회장의 조용하지만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우리투자증권 인수다. 인수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도 농협금융은 들러리 취급을 받았다. 겉으로 보이는 의지 자체가 달랐다. 가장 강력한 인수후보였던 KB금융이 30명으로 이뤄진 인수전담팀을 발족시킨 반면 농협금융의 전담팀은 고작 8명이었다.

임 회장은 대주주인 농협중앙회를 비롯해 금융자회사·노동조합까지 찾아다니며 우리투자증권 인수의 당위성을 설파했고 동의를 이끌어냈다.


농협금융의 한 관계자는 "지주 내부에서 우리투자증권 인수를 놓고 회의론이 나오자 임 회장이 영화 '300'을 인용하며 '할 수 있다'는 사기를 고취시켰는데 결국 최종 승자가 됐다"고 말했다. 영화 '300'은 100만 페르시아 대군에 맞서 싸운 300명의 스파르타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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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신동규 회장 때 껄끄러워진 농협중앙회와의 관계를 정상화시킨 것도 주효했다. 임 회장은 강연이나 외부 인터뷰 때마다 "농협금융의 근간은 농민과 농촌이다"란 사실을 강조했다. 옥상옥으로 치부되던 농협중앙회는 임 회장에게 금융사업에서의 전결권을 부여했다. 최근 오픈한 국내 1호 복합점포 역시 임 회장의 빠른 의사결정과 지주회장으로서 안정적인 리더십 등이 절묘하게 만났기에 가능했다. 복합점포 운영에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은 이가 바로 임 회장이다.

어느 금융사보다 군대식 문화가 강한 농협금융 조직에 유연성이 가미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임 회장의 지점 방문목록에서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오지 점포다. 강원도 산간에 있는 단위조합을 찾아가 직원들 앞에서 직접 지주운영 방안에 대한 프레젠테이션까지 했다. 지주 수장의 탈권위는 보수적인 농협 금융맨들을 변화시키는 자극제가 됐다. 김주하 농협은행장이 역대 어느 은행장보다 외부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이 대목에서 수긍이 된다. 김 행장은 지주 부사장 시절 임 회장을 보좌했다.

성과는 이미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영업이익은 직전년도 대비 크게 늘었다. 실적반등에 자신감을 얻은 농협은행은 노인 전용 창구를 신설하는 등 시니어금융을 적극 공략한다는 로드맵을 설정했다. 농협생명은 전국 단위농협의 측면지원을 받아 삼성·한화·교보생명 등 빅3 생보사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농협금융 최초로 삼성출신을 사장 자리에 앉힌 농협카드 역시 '마의 10% 점유율' 고지를 넘었다. 3월에는 각 계열사가 공동 사업을 펼치고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는 '범농협카드'를 내놓는다.

이에 따라 2012년 말 80%에 육박하던 은행 비중은 지난해 9월 말 현재 68%로 떨어졌고 20%를 기록했던 비은행 비중은 32%로 확대됐다.

실적에서 드러나는 자신감은 올해 경영 목표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임 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올해에는 9,000억원(지난해 8,0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겠다"며 자산운용의 명가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농협중앙회 상호금융 등을 포함할 경우 자산운용 규모가 200조원에 이르는 점을 인식한 것이지만, 국내 금융산업에서 가장 취약하면서도 공략에 여유가 있는 부분이 '자산운용'임을 간파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한국금융산업의 미래 흐름을 꿰뚫고 있다는 얘기다. NH-CA자산운용에서 개발하고 농협은행과 증권에서 판매할 대표 투자상품 '올셋(Allset)'은 올 들어 금융사들이 내놓은 상품 가운데 단연 눈에 띈다.

하지만 농협금융에도 아킬레스건은 있다. 바로 상호금융에 소속돼 있는 일선 조합들과의 관계 설정이다. 일선 조합은 여전히 부실이 많고 사고도 많이 일어난다. 농협금융과 관련이 없지만 일반 국민은 농협금융 소속의 '농협은행'과 상호금융 소속의 조합을 구별 못한다. 농협금융이 진정한 금융 강자로 자리매김하려면 반드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대형금융지주 관계자는 "민영화를 앞둔 우리은행이 빠지고 그 자리를 농협금융이 차지하는 '신(新) 4대 금융지주'의 틀이 시작됐다"며 "임 회장은 외부출신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의 교본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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