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지 터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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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핑 베토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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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엔 유난히도 음악 영화들이 많다. 중년 사내들의 록 밴드를 소재로 한 한국 영화 '즐거운 인생'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이 이미 극장가에 선보였고 아일랜드 뮤지컬 영화 '원스', 미국의 3인조 컨트리 여성 밴드 '딕시 칙스'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딕시 칙스:셥업 앤 싱' 등 줄줄이 개봉 대기 중이다. 여기에 클래식을 소재로 한 영화 두 편이 가세한다.
천재 시인 랭보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토탈 이클립스'를 만들었던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의 '카핑 베토벤(Copying Beethoven)'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악보를 필사(筆寫)한 여인 '안나 홀츠'를 다루었고 프랑스 드니 데르쿠르 감독의 '페이지 터너(The Page Turner)'는 연주회장에서 피아노 악보를 넘겨주는 일을 하는 한 여자 이야기를 다룬 스릴러다.
# 페이지 터너
정육점 딸, 유명 음악 학원 입학 꿈꾸지만…
흑인 오페라 여가수 신시아를 자신만의 디바(노래의 여신)로 삼는 우편배달부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 프랑스 장 자크 베넥스 감독의 '디바(1980년)'는 클래식을 소재로 한 스릴러의 백미로 꼽힌다. 10월 3일 개봉하는 드니 데르쿠르 감독의 영화 '페이지 터너'는 클래식 음악을 스릴러와 결합시킨 디바의 계보를 잇는 프랑스 영화.
정육점 딸인 10대 소녀 멜라니(데보라 프랑수아)는 어려운 형편에 피아노를 배우며 유명 음악 학교 입학을 꿈꾼다. 꼭 합격하겠다는 부모와의 약속을 뒤로 하고 시험장에 들어간 멜라니.
심사위원인 피아니스트 아리안(캐서린 프로트)은 심사 도중 잠시 한눈을 팔고 그 모습에 당황한 멜라니는 제 실력을 발휘 못하고 흔들리고 만다.
피아니스트의 꿈이 산산이 무너진 멜라니는 몇 년 후 우연한 기회에 심사위원이었던 아리안의 페이지 터너, 즉 악보 넘겨 주는 여자가 된다.
스릴러물 특유의 섬뜩한 장면이라곤 한 컷도 찾지 못할 정도의 절제된 표현 속에 꿈이 좌절된 어린 소녀의 고통과 비극적 정서를 실감나게 표현한 감독의 능력에 감탄사를 터뜨리게 된다. 바흐의 프렐류드와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트리오 2번, 슈베르트의 노투르노 등 클래식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곡들이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10월 3일 개봉
# 카핑 베토벤
10여분간의 합창교향곡 연주회 장면 감동적
말년의 베토벤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사실 주인공은 베토벤의 악보를 카피하는 안나 홀츠라는 가공의 인물이다. 베토벤(에드 해리스)이 그의 마지막 교향곡 9번 초연을 며칠 앞두고 자신이 쓴 악보를 연주자용으로 베낄 카피스트를 구한다. 음대 우등생인 안나 홀츠(다이앤 크루거)가 교수 추천서를 들고 베토벤의 집을 찾는다.
까다로운 성격으로 유명한 베토벤은 처음엔 여자인 그녀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지만 만만치 않은 음악적 재능을 지닌 그녀에게 점점 마음의 문을 연다.
9번 합창 교향곡 초연 당시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의 열화가 같은 박수를 듣지 못한 지휘자 베토벤에게 한 여성이 무대에 올라가 그를 뒤돌게 하며 관객들의 반응을 전해 줬다는 음악사의 유명한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베토벤 9번 교향곡 초연 장소 빈 케른트너토아 극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한 10여분간의 연주회 장면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클래식 음악 영화의 고전 '아마데우스'나 '파리넬리', '가면 속의 아리아'에 비하면 극적 긴장감은 부족하지만 베토벤 말년 작품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10월 11일 개봉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