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심층진단] 예스밸리… 어메이징밸리… 억지춘향식 이름 포장에 예산 펑펑

[도마 위 오른 산단공 전시행정] ■ '산단 환경 디자인 개선' 사업 논란<br>명칭만 요란·비전 반영 안돼 입주업체 의견 수렴 전혀 없고<br>도입조차 모르는 곳도 수두룩<br>공단별 특성화 구체 계획 없어… 산단공 "장기 발전 전략" 강변만

지난 1960~1970년대 수출전진기지로 활약했던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전경(옛 구로공단). 구로공단처럼 성격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름이 바뀌는 것과 달리 산업단지공단이 인위적으로 '억지춘향'식 공단 개명을 추진, 관련업계의 반발을 낳고 있다. 서울경제DB


공단 이름 변경을 골자로 한 '산업단지 환경 디자인 개선' 사업에 대해 전형적인 전시행정과 예산낭비 아니냐는 비판이 입주업체를 중심으로 강하게 일고 있다.

공단별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특성화 발전방안 추진이나 체계적인 지원 없이 이름만 바꿨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바뀐 명칭 또한 각 산업단지의 특성과 비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은 실정이다.


20일 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산단공은 지난해 9월 산업단지 환경 디자인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남동, 반월ㆍ시화, 구미, 녹산공업단지를 각각 남동인더스파크, 안산ㆍ시흥스마트허브, 구미IT파크, 녹산이노밸리 등으로 변경하고 단지마다 엠블럼을 제작했다. 산단공은 이뿐 아니라 올해 안으로 창원ㆍ광주ㆍ익산ㆍ아산 등 공단 4곳의 이름도 각각 창원그린테크밸리ㆍ광주사이언스밸리ㆍ익산어메이징밸리ㆍ아산예스밸리로 고칠 방침이다.

이밖에 울산ㆍ대불공단에도 조만간 각각 울산유밸리ㆍ영암테크노폴리스 등의 새 이름을 붙일 예정이다. 사업 초기인 만큼 당분간 기존 산업단지 이름과 병기하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높아지면 서울디지털단지(옛 구로공업단지)처럼 명칭을 아예 대체한다는 게 산단공의 구상이다.

이에 대해 산업단지 입주업체들 사이에서는 이번 명칭 변경 추진이 결국 전시행정에 불과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공단별로 실제적인 특성화 지원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이노밸리ㆍ예스밸리ㆍ어메이징밸리 등 정체불명의 이름만 갖다붙이며 예산만 축내고 있다는 것.

대다수 기업은 특히 새 이름이 해당 산업단지의 특성과 비전을 반영하고 있다는 데 전혀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산업단지 입주업체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결정했다는 산단공 측의 주장과 달리 의견수렴 과정에 참여했다는 기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아산산업단지의 한 기업 관계자는 "산단공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명칭 변경과 관련해 우리 회사에 의견을 물어온 적은 없었다"며 "간판을 바꾸는 데만도 돈이 꽤 들 텐데 예스밸리라는 이름을 듣고 아산단지의 특성이나 미래 비전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녹산이노밸리'에 입주해 있는 한 기업 관계자는 "산단공과 부산 지자체에서 녹산공단을 이노밸리로 부르기로 했다는 사실을 기자를 통해 처음 알았다"며 "이노밸리는 사전에도 없는 단어인데 무슨 뜻인지 설명부터 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는 또 "단지 입주업체 대다수가 모르는 사업에 아까운 세금이 나가고 있다니 답답한 마음"이라고 주장했다.


워낙 낯선 이름이다 보니 이미 새 명칭이 도입된 4개 단지 내에서도 이를 사용하는 이가 거의 없다. 산단공조차 아직까지 산업동향 등 대다수 통계자료에 새 이름을 병기하고 있지 않다. 보도자료 등 공식문서에서조차 최근까지 '구미공단' 등 기존 명칭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안산ㆍ시흥스마트허브'의 한 업체 대표이사는 "스마트허브라는 이름은 지나가다 산단공 안내판에서만 본 적이 있다"며 "하지만 뜻을 모르니 단지 내에서 이 이름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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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심각한 것은 산단공이 아직까지 바뀐 이름에 걸맞은 공단 특성화 지원계획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공단 관계자 대다수는 명칭 변경보다 각 단지별 미래 특성화 발전전략을 구체적으로 세우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며 어이없어 하고 있다. 산업단지 이름을 바꾸려면 실질적인 공단 콘텐츠가 따라준 다음 이에 맞춰 신중하게 바꿔야 하는 게 순서라는 얘기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산단공의 해명은 군색하기 이를 데 없다. 한 고위관계자는 "이름을 바꾼 것 자체가 '아주 장기적으로' 해당 공단을 그에 맞춰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뜻한다"며 "새 이름이 널리 쓰이도록 앞으로 홍보를 강화할 것"이라고 강변했다.

산업단지 환경 디자인 개선사업은 지난 2009년 지식경제부가 디자인 투자 확대를 선언하고 디자인 기술개발사업을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으로 격상하자 산단공과 8개 지자체가 이에 응모, 지난해까지 매년 지원금을 받아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명칭 교체, 엠블럼 지정, 간판 정비 등을 통해 공단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각 단지별로 2억원가량의 비용이 들며 지경부가 전체 비용의 70%를, 산단공과 지자체가 30%를 각각 부담한다. 대중교통 정류장 이름 변경, 간판ㆍ안내표지판 교체 등 추가적인 부대비용은 산단공과 지자체가 별도로 지출한다.

산단공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산업단지가 지역명에 따라 획일적인 이름을 갖고 있었는데 해당 단지의 고유한 특성과 미래상을 살리기 위해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며 "이번 사업을 통해 각 공단이 갖고 있던 부정적 이미지가 많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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