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방 뺏기 피비린내 나는 난투극인천의 한 불법 도박 투견장. 분방한 록 음악과 느린 화면, 정지 화면이 빠르게 교차하며 등장인물을 소개한다.
택시운전을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왕년의 금고털이, 일명 가죽잠바 경선(이혜영). 피곤에 지친 몸을 드링크제로 풀고, 담배 한가치에 한숨을 돌리지만 취객의 희롱에는 물불이 없다.
입에서는 거친 육두문자와 노련한 발차기로 취객을 쓰러뜨려 경찰서 신세를 여러 번 진다.
칠성파 일당은 아직도 빚을 무기로 그녀를 옥죄인다.
전직 라운드 걸 출신이자 가수 지망행인 수진(전도연). 일명 선그라스. 투견장을 운영하는 지독한 남자 독불(정재영)이와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세상살이는 온통 잿빛 세상뿐이다.
툭하면 독불이한테 얻어맞으면서도 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연민에 가까운 정마저 한없이 준다.
돈과 힘과 탐욕이 넘쳐대는 불법 투견장. 물고 뜯는 비정한 세계는 투견들의 모습뿐만이 아니다. 투견장을 둘러싼 한물간 마초들의 인생이 그렇고 투견장 주위의 돌고 도는 돈과 그 돈을 목표로 기회를 엿보는 할일 없는 양아치들까지 이들 모두 투견장을 맴돌고 있다.
그곳에 경선과 수진이 나타나면서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돈가방을 뺏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난투극이 전개된다.
16mm로 찍은 단편 4편을 모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2000년 평단과 관객을 놀라게 했고 인터넷 패러리 영화 '다찌마와 리'로 작년 가장 주목 받던 신예 류승완감독이 첫 장편으로 '피도 눈물도 없이'(3월1일개봉)을 내 놨다.
느린 화면, 급정지화면을 이용한 편집, 경쾌하고 박진감 넘치는 음악과 장면 전개 등은 그동안 작품을 통해 짬짬이 보여줬던 류감독 개성을 맘껏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펄프 느와르'를 표방한 작품이어서인지 '저수지의 개들''펄프픽션'의 ?틴 타란니노 감독과 영국 신예 가이 리치 감독의 연출을 떠올리게 한다. '펄프 느와르'는 '필름 느와르'의 무거운 의미보다 한층 대중적인 느와르 영화를 지칭하는 신조어.
급정지 화면으로 등장인물을 설명하거나, 한 사건을 놓고 다른 관점에서 원인과 전개를 영상으로 보여주고, 화면분할로 여러 인물과 정황을 한꺼번에 내보이는 방식 역시 타란티노나 가이리치의 영화에서 낯을 익힌 기법이다.
2시간에 가까운 상영시간동안 잠시도 눈을 뗄수없게 핑핑 돌아가는 이야기에 양념으로 맛을 내는 것은 다양한 조역들과 유머감각이다.
대종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한 23세의 젊은 배우 류승범(룸살롱 웨이터 채민수역)에서 베테랑 연기자 65세의 신구(사채업자 KGB(김금복)역)까지 30여년을 뛰어넘는 신구세대의 다양한 연기자가 혼합되어 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쉽잔을 것 같은 한물간 주먹패 칠성파(백일섭, 김영인, 백찬기)같은 인물들은 우리가 '촌스럽다'고 밀어내버린 70년대 한국 액션영화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것이 이 영화의 또다른 미덕이다.
제목과 달리 영화에는 피와 눈물(그리고 주먹질, 발길질, 칼질)이 넘친다.
화려한 발차기와 주먹질 개싸움처럼 엉겨드는 싸움판, 여자에게도 가차없는 폭력은 근래 어떤 한국영화에서도 낭자한 유혈극을 연출, 한국영화에는 '금기'란게 없다는 걸 다시한번 확인시킨다. 폭력묘사에 관한 한 한국영화는 세계 수준의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