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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금융권인 A사는 올 들어서만 두번의 검사를 받았다. 대기업 소속인 탓에 금융감독원이 계열사와의 거래와 차명계좌 내역을 샅샅이 뒤진 것이다. 당시 금감원은 검사기간까지 연장하면서 문제점이 있는지 꼼꼼히 살폈다. 뒤이어 A사는 곧바로 정기검사를 받았다. A사의 한 관계자는 "동양 사태를 전후로 당국이 전방위로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며 "문제의 소지가 있는 사안이면 전수조사나 테마검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이 동양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당국이 시장규율을 내세워 관치를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4대 금융지주 검사부터 해외영업점 현황 파악, 대기업 계열 특별검사까지 각종 검사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동양 사태 이후 '시장의 규율'을 유달리 강조하고 있는 시점과 맞물려 이런 해석이 많아지고 있다.
당국은 "처리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고 하지만 업계에서는 당국이 부실 감독 책임을 묻는 시선을 돌리기 위해 금융회사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의혹제기가 그치지 않는다.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탈출하고 당국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반전 카드'가 아니냐는 것이다.
◇금융당국 눈치 보는 금융사들=금융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12일 "동양 사태와 관련한 국정감사 전후로 금감원이 검사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전직 최고경영자(CEO)와 관련된 부분들까지 캐고 있어 금융사 입장에서는 의도와 배경이 뭔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금감원은 현재 4대 금융지주 계열사를 모두 검사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 도쿄지점 특별검사를 벌이고 있다 해당 지점장이 부당 대출로 받은 수수료 가운데 20억원 이상의 돈이 국내로 유입된 점을 잡았는데 전직 CEO와의 연관 의혹까지 흘러나온다.
종합검사 중인 하나금융의 경우 김승유 전 회장의 미술품 구매 등을 들여다보고 있고 신한은 계좌 무단조회, 우리는 파이시티 관련 문제를 따져보고 있다.
움직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앞서 동양 사태 전후로 대기업 계열 저축은행과 카드사ㆍ캐피털사의 자금흐름을 추적하고 있고 시중은행 해외영업점에 대한 실태파악에도 나섰다. 저축은행은 신용대출이 많은 곳을 중심으로 현장검사에 착수했다.
동시다발적으로 각종 검사와 모니터링이 이뤄지다 보니 인력이 부족한 상황까지 생기고 있다. 동양 관련 검사에 80명 안팎이 투입돼 있는데다 예정돼 있는 정기검사와 특별검사까지 하려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이 때문에 국민과 신한은행은 검사인원이 3명 정도에 불과하다.
금융사들은 부담감을 호소하고 있다. 금감원이 연이어 검사와 감독 강화에 나서고 있는 탓이다. 특히 지배구조 문제가 걸린 곳들은 금감원의 속내를 알기 위해 분주하다.
당장 KB와 하나금융만 해도 전직 CEO가 계속 언급되고 있고 신한은 내년 3월에 임기가 만료되는 한동우 회장의 연임 문제가 걸려 있다. 민영화를 앞둔 우리금융도 파이시티 등 잇단 악재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금감원 "할 일 할 뿐, 내부제보 많아"=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최 원장 취임 이후 문제가 된 사안은 바로 처리한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다"며 "지금까지 거론된 것들 중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게 있느냐"고 반문했다.
동양 사태를 전후로 일이 겹쳐서 그렇지 모두 중대한 사안들이었다는 얘기다. 특히 검사를 미룰 경우 감당이 되지 않고 특혜시비가 나올 수 있다는 게 금감원의 입장이다.
게다가 내부제보가 많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말도 있다. KB금융이 대표적인데 도쿄지점뿐 아니라 상당수 건에서 전 어윤대 회장ㆍ민병덕 은행장 라인에 섰던 이들과 현 임영록 회장ㆍ이건호 행장 밑에 있는 임직원 간 상대방에 대한 제보가 많다는 설명이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양쪽에서 상대방을 두고 '왜 이런 건 조사를 안 하느냐' 같은 제보가 쏟아진다"며 "제보가 들어오면 사실확인을 안 할 수 없다"고 했다.
◇금융당국도 감사 받을 처지=이런 가운데 금융당국도 또다시 고강도 감사를 받을 처지에 놓였다. 감사원은 동양그룹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의 사전대응이 적절했는지에 대해 내부감사를 벌이고 있으며 조만간 정식 감사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으로서는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에 이어 또 한번 책임추궁을 당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문책조치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벌써부터 일부에서는 감사원의 고강도 감사를 무디게 하기 위해 금감원 감사 자리를 감사원에 '양보(?)'할 것이라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