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복수노조·전임자 시한폭탄 D-100] (1) 큰틀부터 합의 서둘러야

법시행 코앞인데 勞도 使도 13년째 제 주장만 되풀이<br>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br> 중소노조 자립방안 인정등 터놓고 대화 타협안 마련을

전공노, 민공노, 법원공무원노조 등 3개 공무원노조가 통합공무원노조 설립을 위한 찬반투표에 들어간 21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 있는 전공노 사무 실에서 조합원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투표를 하고 있다. 근무시간 투표 금지 등 정부 측의 압박에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한 조합원들이 얼굴 노출을 꺼리 는 등 극도로 몸을 사리는 모습이 역력하다. /최흥수기자


"13년째 같은 얘기 듣는 게 이제 진절머리가 나네요. 노나 사나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는 있는 지 의심스럽습니다." 노사정위원회 주최로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복수노조ㆍ전임자 문제 토론회에 참석한 한 방청객은 "이렇게 서로 자기 주장만 늘어놓고 합의할 생각은 없는 노사나 그런 노사에게 합의안을 요구하며 뒷짐지고 있는 정부 모두 크게 반성해야 된다"고 질타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복수노조ㆍ전임자 조항이 23일로 시행 100일을 앞두고 있지만 현재 노사정은 어느 것 하나도 합의한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구체적인 준비 없이 법이 시행될 경우 지금까지의 노사갈등과는 차원이 다른 노사관계 파탄지경이 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복수노조ㆍ전임자 조항이 시행되려면 최소한 30여개의 관련 법안이 개정돼야 하는 등 일정이 촉박하다며 복수노조의 창구 단일화와 중소 노동조합의 자립방안 등 기존에 논의해온 최소한의 것들에 대해서는 노사가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3년째 같은 이야기 반복하는 노사=복수노조ㆍ전임자 문제를 얘기할 때 노사 양측이 빠뜨리지 않고 항상 주장하는 게 있다. 바로 글로벌 스탠더드(국제적 기준)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준이란 게 각자의 입장에서 해석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다는 데 있다. 자신에게 유리할 때는 국제적 기준을 따라야 한다고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한국의 노사관계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피해간다. 전임자 급여 금지에 대해 노동계는 이 사안은 노사가 알아서 해야 할 사항이지 국가가 법으로 강제할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면 경영계는 수익자부담원칙을 내세우며 노조 전임자 임금은 노조 스스로 지급하는 게 맞다고 맞서고 있다. 노동계가 근거로 삼는 국제적 기준은 ILO(국제노동기구)의 권고 사항이다. ILO내 결사의자유위원회는 우리나라에게 전임자 급여지급문제를 법으로 강제하는 대신 결사의 자유원칙과 부합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라고 권고했다는 것. 노동계는 이를 근거로 노사 자율 해결만 주장할 뿐 노사가 합의한 노조법의 부칙에 노사가 전임자 급여지원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그 재원을 노동조합의 재정자립에 사용하도록 명시한 부분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복수노조의 허용에 따른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를 놓고도 노사는 13년 째 입장 변화가 없다. 노동계는 복수노조를 허용하되 강제적 교섭창구 단일화를 반대하고 노사 자율교섭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경영계는 현장의 혼란과 교섭 비용 증가를 우려해 창구단일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복수노조 허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복수노조의 허용이라는 국제적 기준(ILO협약)에는 노사 모두 공감하면서도 교섭창구 방식의 구체적 실행 방안에 대해 좀처럼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노사 양측의 어떤 주장에도 논리적 우월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13년 째 법안이 유예되는 동안 이렇다 할 합의점 없이 노사가 같은 이야기만 되풀이 하는 것은 이를 잘 대변한다. ◇이대로 법 시행하면 큰일난다=이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곳은 경총과 상의, 한국노총과 민노총 등 노사를 대표하는 단체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공허한 주장과는 달리 기업 현장에서는 담당자들이 이렇다 할 정보도 없이 어떤 준비를 해야 될지 몰라 애를 태우고 있다. 현대차 노무담당자는 "복수노조가 생기면 창구 단일화는 되는지, 단일화가 되면 어떤 방식으로 되는지 등을 알아야 내년 예산에도 반영하고 대응책을 강구할 수 있지 않겠냐"며 "시나리오가 하도 많아 대책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에 시행을 유예할 때도 아무런 준비가 안돼 염려를 많이 했는데 그때는 다행히 법 시행이 유예돼 그냥 넘어갔다"며 "정부가 나서서 최소한의 길 안내는 해줘야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총의 남용우 노사대책본부장은 "기업 차원에서 보면 단순하게 인력과 예산 충원의 문제가 아니라 노사관계 전체 시스템을 정비해야 되는 차원이기 때문에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며 "이제껏 정부안이 나오지 않은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KT의 전직 노조 간부는 "KT의 경우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회사가 새로 허수아비 노조를 만든 뒤 이쪽으로 전체 조합원들을 옮겨가도록 할 가능성이 크다"며 "공익위원안 대로 창구가 단일화되면 기존 노조는 그냥 없어질 수도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윤곽이 빨리 정해져야 대책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천 남동공단의 자동차부품업체인 K사의 K노조위원장은 "중소 사업장일수록 노조 전임자 임금 금지가 핵심 현안"이라며 "지금이라도 노조의 재정자립 방안이 명확하게 제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 중소 노조 자립 방안은 인정해야=노사정위원회 노사관계선진화위원회는 최근 그동안의 협의와 해외 사례 검토 등의 과정을 거쳐 공익위원안을 내놓았다. 핵심은 복수노조의 경우 자율적 교섭창구 단일화를 원칙으로 하되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교섭대표제를 실시하고 전임자의 경우 전임자 급여지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예외적으로 타임오프제(특정 노조업무 활동시간에 대해 유급 인정)를 적용하고 3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도록 했다. 이 공익위원안에 대해 노사는 모두 반대하고 있다. 노사관계선진화위원회의 한 참석자는"물밑 대화가 한창 진행중"이라고 말하지만 공식적으로 결과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고 있다.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미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실정에 맞는 타협안을내놔야 할 때"라며 "노사 모두 반대는 하지만 그동안 오랜 논의 끝에 나온 공익위원안이 그래도 합리적인 대안으로 판단되는 만큼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시행방안 마련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이정 한성대 교수는 "복수노조ㆍ전임자 조항이 13년동안 유예된 것은 노사가 서로 속마음을 숨겨왔기 때문"이라며 "이제라도 터놓고 대화해 합의안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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