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그림과 함께 일본 역사 생생하게

■ 처음 읽는 일본사<br>(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휴머니스트출판그룹 펴냄)


"덴노 헤이카 반사이!"(천황폐하 만세!)

2차대전 말기 무사정신으로 무장한 일본군들이 마지막 옥쇄를 감행하기 전 악에 받쳐 외치던 함성이다. 하지만 천황(天皇)과 무사는 아직까지 일본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이다. 여기에 조닌(商人)이라 불리는 상인들까지 가세하면 일본 문화와 멘탈이 완성된다.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를 쓴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책답게 '처음 읽는 일본사' 역시 정치적 사건과 연대표 중심의 메말라 있는 역사책이 아니다. 제목처럼 일본사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역사적 사건을 생생하게 재구성하고 인물에 얽힌 일화를 곳곳에 배치해 역사라는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숨 쉬며 살아 있는 책으로 집필한 것이다. 여기에 낯선 공간으로 안내하는 지도와 일본 문화와 역사를 담은 200여 컷의 도판이라는 무대 장치들은 일본을 더욱 생생하게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책은 "고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본과 우리나라는 빈번하게 접촉을 하며 다양한 교류를 해왔다"며"그렇기 때문에 역사 시간에 잊을 만하면 꼭 한 번씩 등장하는 단골손님이 바로 일본"이라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책은 일본사는 중국사와 더불어 역사 교과서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지만 시대별로 나눠 분절적으로만 배운 탓에 일본의 역사적 흐름을 거시적으로 읽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음을 상기시킨다. 게다가 왜구, 임진왜란, 식민지 등 가해와 피해 관계만이 두드러지게 다루어져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일본사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현실도 간과하지 않는다.

책은 이런 점에 착안, 일본사를 전면적으로 다루며 한국인의 눈으로 이웃 일본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읽으려고 애썼다. 특히 모방에만 능한 나라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넘어 일본 문화의 창조적 능력을 읽으려고 노력한 것이나, 제국주의와 군사 대국화로 국제 사회에 끼친 악영향 이면에 있는 일본 시민 사회와 시민운동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을 일깨우는 점이 그렇다. 국가 중심적 역사 인식을 넘어 일본 시민 사회의 모습까지 읽을 수 있도록 스펙트럼을 넓힌 시도가 돋보이는 책이다. 1만9,000원.

는 것은 역사교사모임이 일본의 교사들과 오랫동안 교류하며 상호 이해를 높인 덕분이다.

이 시리즈의 다른 권과 마찬가지로 세계사 속에서 일본의 문명사적 의미와 그 나라 사람들의 성취와 노력을 읽기 위해 애썼지만 전 세계인에게 경각심을 일깨운 반인류적 행태에 대한 반성적 시각도 놓치지 않았다. 제국주의적 사상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침략과 전쟁이 얼마나 파괴적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 과정에서, 일본사에서 반복되는 문화 수용 형태의 특징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외국 것을 흡수해서 소화한 뒤 그 축적된 힘으로 해외까지 뻗어 나갔다가 쇠퇴하는 역사를 되풀이해 왔음을 볼 수 있다.


"고대와 중세에는 한국과 중국의 문화를 수용하여 독자적인 일본 문화를 꽃피운 뒤, 무사정권을 거쳐 전국 시대가 끝난 뒤에는 조선으로 눈을 돌려 임진왜란을 일으켰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이 붕괴했다. 근대에는 1854년 미국의 페리 제독에 의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뒤 일청 전쟁과 일러 전쟁을 일으키고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더니 미국까지 공격하다가 원자 폭탄에 굴복하고 말았던 역사 또한 비슷하다. 현대가 시작되는 1945년부터는 미 군정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여 1970~1980년대에 고도성장을 이뤘고, 1980년대 중반 일본 경제는 미국마저 위협할 정도가 됐다. 이러한 고도성장은 1980년대 후반에 한풀 꺾여 1990년대에는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었지만, 최근에는 부활 조짐을 보이면서 군사 대국으로 발돋움하려 하고 있다." -프롤로그 중에서(14~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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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 책은 역사 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분쟁 등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꿈틀대는 일본 제국주의의 잔여물들을 살펴봄과 동시에 그간 잘 접할 수 없었던 일본 내 다른 목소리들, 평화헌법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다양한 시민운동의 흐름까지 두루 살펴본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의 공존을 위한 일본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 보며 일본의 어제와 오늘을, 한국과 일본의 화해를 위한 끈을 이을 수 있다.

3. 한국인의 눈으로 본 각국의 역사, '처음 읽는 세계사' 시리즈

'주연 유럽, 조연 중국'의 세계사를 넘어 '한국인의 눈'으로 세계사를 보자는 취지에서 '처음 읽는 세계사' 시리즈가 기획됐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의 교사들이 7개 나라를 선정했고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국의 통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처음 읽는 일본사》는 2010년에 출간된 《처음 읽는 터키사》, 《처음 읽는 미국사》, 그리고 2012년에 나온 《처음 읽는 인도사》의 뒤를 읽는 시리즈 네 번째 책이다.

시리즈의 책들은 각 나라의 고유한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 각국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했다. 세계사 속에서 주요 사건과 인물, 문명사적 의미를 익힐 수 있도록 연표와 지도를 활용해 시리즈 도서들 간의 연결점을 분명히 했다. 통사라고 해서 정치적 사건들을 연대표에 맞춰 기계적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생생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것 또한 이 시리즈만의 특징이다. 교과서만으로는 자세히 알 수 없었던 나라들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입문서로서, 또는 그 나라의 여행을 앞둔 이들에게 훌륭한 가이드북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막이 올라가고 무대에 덴노가 등장한다. 호족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던 그는 왕권을 강화하는 쇼토쿠 태자의 다이카 개신으로 기세 양양해진다. 2막에서는 무사들이 들고 일어나 가마쿠라 바쿠후(幕府)를 연다. 덴노가 있는 교토 쪽을 비추던 핀 조명은 가마쿠라, 무로마치, 에도로 차례대로 옮겨가며 무사에게 집중된다. 그리고 그사이 등장한 상인은 가부키와 우키요에(일본 목판화)를 유행시키며 새로운 문화를 꽃피운다.

일본의 근대화 프로젝트인 메이지 유신으로 3막이 시작한다. 한동안 잊혔던 덴노는 갑자기 신으로 떠받들어지며 화려하게 부활하고, 무사는 군부로, 상인은 재벌로 거듭난다. 동아시아를 누비며 여기저기 벌집으로 만들다가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일으키더니 원자 폭탄이라는 날벼락을 맞으며 막이 내려간다. 4막에서는 미군이 등장해 덴노와 군부, 재벌의 권력을 땅으로 떨어뜨리고 평화헌법을 만든다. 민간에서는 민주주의를 향한 움직임이 꿈틀거리지만, 한편에서는 제국주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세력이 공존하는 가운데 오늘날의 일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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