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대한민국의 축소판

"김 차관, 오랜만이야. 어떻게 지내고 있어? 힘들지 않아? 또는 군인이 다 된 것 같아.” 최근 친구들을 만나거나 지인들을 만날 때면 건네오는 인사말이다. 초병이 지키는 정문, 출퇴근 때의 거수경례, 전군지휘관회의의 엄숙함, 장군들의 절도 있는 언행…. 나도 이제는 이런 분위기에 편안해졌다. 지난 2004년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에서 국방부 기획관리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나는 한동안 국방부의 광범위한 업무영역에 새삼 놀랐다. ‘대한민국 정부의 축소판’이라는 어구가 국방부를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먹고 입고 자는 의식주 문제 해결, 간부 육성을 위한 각종 학교 운영과 전투력 향상을 위한 지상ㆍ해상ㆍ공중 전투훈련 실시, 종교ㆍ문화ㆍ여가생활을 위한 지원, 기율과 기강, 법질서 유지를 위한 기무ㆍ헌병ㆍ검찰ㆍ법원조직 운영, 고추장ㆍ된장ㆍ라면에서 미사일ㆍ군사위성ㆍ조기경보기와 같은 최첨단 무기의 개발ㆍ구매에 이르기까지 국방을 위해 수행해야 할 업무영역의 한계를 긋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올해 국방예산만 하더라도 24조5,000억원, 정부 예산의 16% 수준, GDP 대비 2.7%, 교육인적자원부ㆍ행정자치부에 이어 3번째의 초대형 살림살이다. 나는 지난해 11월27일 차관에 임명되고서 문민차관으로서의 역할과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는 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국방부의 가족이 된 그날부터 나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고심해왔다. 내 스스로 찾은 해법은 동종교배(同種交配)의 덫에서 탈출하자는 것이었다. 나의 결론은 그간의 공직생활에서 얻은 경험과 성찰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나는 윤광웅 전 국방장관에게 건의를 드렸다. 국방부의 현안업무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관 행정부처, 예컨대 정보통신부ㆍ건설교통부ㆍ환경부ㆍ보건복지부ㆍ기획예산처 등과 5~6명 정도 과장급을 교환 근무하게 해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우리 국방부의 행정역량을 단기간 내에 배가하는 방안이었다. 그리고 외교부로부터 국장급 1명도 받아들였다. 때마침 열린 국방부와 정통부 장관간 만찬회동에서 국방과학연구소(ADD)와 전자통신 연구소(ETRI)간 협력사업과 과장급 교환근무 등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한 합의를 토대로 현재 주파수인식기술(RFID), 무선인터넷기술(WiBro), 로봇ㆍ생체인식 등 IT839 첨단기술을 국방 군사 분야에 접목시키기 위한 파이롯트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천만다행이다. 나를 포함한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기존 행정부처 업무의 경계와 벽을 뛰어넘어 지식과 정보, 경험과 노하우를 융합해 변화와 혁신을 추구할 때라고 생각한다. 군사혁신의 산물인 인터넷(internet)이 이 세상을 빛의 속도로 무섭게 바꾸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너무나 비슷한 사고를 가진 우리 공무원 수준의 고정관념과 발상에서 탈피해야 한다. 한 국가의 힘은 경제력ㆍ과학기술력ㆍ군사력과 같은 하드파워에서 나오며 여기에 외교력, 문화창조력, 국제 공공질서에의 공헌도 등과 같은 소프트파워가 가세할 때 상승효과가 더욱 크다고 한다. 병력 중심의 재래식 군사력을 ‘과학기술 정보군’으로 건설하려는 국방개혁 2020비전의 성공 여부도 우리 사회의 경제ㆍ과학ㆍ교육ㆍ정보화ㆍ복지시스템 등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식과 정보, 경험과 노하우를 상호 교류함으로써 변화와 혁신을 얼마만큼 일구어내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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