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4월5일] 토머스 홉스


스페인 무적함대의 침입이라는 공포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람을 때려 목사직에서 쫓겨난 부친의 피를 받아서일까. 1588년 4월5일 태어난 영국의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의 사상에 잔뜩 깔린 게 있다. 공포와 투쟁ㆍ열정. 청교도혁명이 한창이던 1651년 출간된 ‘리바이어던(Leviathan)’을 더듬어보자. ‘자연상태의 삶은 고독하고 불결하며 야만적이고 부족하다. 자연상태란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다.’ 17세기 유럽판 성악설인 셈이다. 늑대의 심성을 가진 인간들의 사회가 어떻게 굴러갈까. 이른바 ‘홉스적 질문’이다. 홉스는 답을 ‘계약’으로 봤다. 개인들이 욕구와 의지를 군주에게 위임하기로 계약하고 통치에 따른다는 것.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수중괴물. 권력에 무한한 권한을 부여해 사회를 유지ㆍ발전시키자는 얘기다. 리바이어던은 논란을 낳았다. 당장 교회가 발끈했다. ‘나’라는 주체를 신에게서 분리했기 때문이다. 국가를 괴물로 비유한 점을 못마땅하게 여긴 의회파를 피해 파리에 망명한 그를 왕당파는 무신론자라며 따돌렸다. 평가도 분분하다. 군주론을 지은 마키아벨리와 더불어 절대왕정에 힘을 실어줬다는 시각과 자연상태의 인간을 시장적 개인으로 봤다는 점에서 시장주의의 원형이라는 해석이 엇갈린다. 후자가 우세해지는 분위기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개인의 권리를 강조한 존 로크와 더불어 초기 경제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두 사람 중 하나로 꼽힌다는 점이다. 홉스는 학문적 박해와 특별연금 수혜라는 냉온탕을 겪으며 91세까지 장수를 누렸다. 화폐를 국가의 혈액으로 비유한 점으로도 유명하다. 영국 왕립학회의 기원도 홉스의 토론모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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