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 캐시카우(cashcow) 기업인 포스코.
이 회사는 지난 93년7월 국내기업으로는 최초로 윤리 강령을 발표했다. 당시는 기업 경영에`윤리`라는 개념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조차 없던 시점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10년이 지난 지금 포스코는 소유ㆍ지배구조 모든 면에서 국민이 존경할만한 상징적인 기업으로 변모했다.
윤리강령을 선포하던 당시 1,339억원이었던 순이익은 10년만에 1조190억원으로 8배나 늘어났다. 이 기간동안 포스코는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등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초우량 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세계적 금융월간지 `유로머니`는 이머징마켓 650개 기업의 기업지배구조 평가에서 포스코를 국내 기업 1위, 전체 기업 1위로 선정했다.
곽정식 포스코 기업윤리팀장은 “윤리강령의 저변에 흐르는 인권ㆍ환경ㆍ노동은 포스코를 국제화시키는 핵심 요소였다”며 “조직이나 시스템이 깨끗해야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체득했다”고 말했다.
◇뿌리가 튼튼하면 열매도 많이 열린다= 우리 기업들은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경영성과에만 주목했을 뿐 과실 분배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돈버는방법엔열중했지만 돈을 값지게 쓰는방법은 간과했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이른바 `반(反)기업 정서`도 사실 과거의 `불가피한 유산`이었다.
박오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은 분명히 고용 창출기반이자 국가 부가가치원으로서 긍정적인 역할이 많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바람직한 기업의 상(像)과 역할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외환위기 이후 우리 기업들이 투명ㆍ윤리경영을 토대로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온 것도 이 같은 배경을 깔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윤리헌장을 제정하고 전담부서를 설치한 기업의 지난해 평균 주가 상승률은 10.2%로 집계된 반면 윤리헌장을 제정하지 않은 기업은 4.8%가 떨어졌다. 실제로 윤리경영의 선도기업으로 꼽히는 신세계의 경우 윤리행동 지침을 마련한 지난 99년 5만4,000원이었던 주가가 지난 6월말 현재 18만6,500원으로 324%나 뛰었다.
지난 3월 그룹을 지주회사 형태로 탈바꿈시킨 LG. 재계 2위의 LG가 시도한 지배구조 개혁의 모델은 그동안 순환출자를 통해 지분구조가 그물처럼 얽혀 대외 신인도에 독버섯으로 작용했던 국내 기업의 재벌체제에 변혁을 몰고 왔다. `1등 LG, 사랑 받는 LG`의 열매를 얻기 위해 뿌리부터 탄탄히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되는 이번 시도는 우리 기업들의 미래 모델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자, 선진형 모델을 향한 첫 발걸음이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주회사가 지배구조의 투명성 높이는 길이라고 볼 때 LG의 용기를 낸 결단”이라고 말했다.
◇존경 받는 기업의 요체= 기업들이 지향해야 할 `존경받는 기업`의 모델은 어떤 것일까.
삼성경제연구소는 “21세기 들어 국내에서도 `존경받는 기업`이란 개념이 기업의 수준을 재는 척도로 등장했다”고 밝혔다. 삼성연구소는
▲미국 포춘
▲영국 파이낸셜타임즈
▲홍콩 아시안 비즈니스
▲일본 다이아몬드지 등의 평가 모형을 토대로
▲경쟁력
▲혁신능력
▲경영성과
▲사회성에 대한 4가지 기준을 내놓았다.
정구현 연세대 경영대학장은 “경영성과가 바탕이 되지 않는 기업의 윤리정신은 의미가 없다”며 이중 첫번째 요건으로 기업의 경영성과를 꼽았다. 이영진 삼성경제연구소 전 수석연구원(현 액센추어컨설팅 부장)도 “탁월한 경영성과를 내는 `강한 기업`상(像)이 기업발전의 필요조건이라면 사회친화 경영을 통한 `사랑받는 기업`상은 충분조건”이라고 지적했다.
막연히 사회공헌을 많이 하는 기업이 존경받으리라는 추론은 잘못된 것으로, `사상누각`일뿐이란 분석이다. 재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포천지의 `가장 존경받는 기업`에서 1위로 선정된 곳이 4개사(IBM, 머크, 러버메이드, 코카콜라)에 불과한 것은 이익과 사회성을 두루 갖추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함축한다.
최인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와 관련, “윤리경영의 출발과 정착을 위해서는 최고경영자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제시했다. 박경서 교수는 “국민의 반 기업정서가 잔존하고 있는게 사실이고 이는 비합법적이지는 않더라도 기업들이 지나치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긴 결과”라며 “정당치 못한 부의 대물림이라는 국민의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사회 재분배와 기여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외부의 도움도 절실하다
존경받는 기업, 존경받는 기업인은 기업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가능한가.
손길승 전경련 회장은 취임사에서 `국민에 사랑받는 기업`을 모토로 내걸었다. 세계적인 윤리기업으로 평가받는 존슨앤존슨은 1943년부터 자체 윤리강령인 `우리의 신조(Our Credo)`를 통해 소비자-종업원-지역사회-주주의 순서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규정해왔다.
박오수 교수는 이에 대해 “기업들이 이윤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자유경쟁체제나 시장경제의 원리가 중시돼야 한다”며 “노조도 윈-윈게임으로 갈 수 있도록 패러다임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자의성이 높은 정부규제가 지속되는 경영환경에서는 경영행태가 불가피하게 비윤리적이 된다”며 “정부의 규제완화와 행정절차의 투명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구현교수는 “기업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라고 전제, “우리 사회 전체가 투명해져야 기업도 좇아갈 수 있다”며 후진적 수준에 머물고 있는 우리 사회의 투명성과 부패구조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종합설문 세부분석
성장가능성 합격점 대내신뢰도 낙제점
서울경제신문이 산하 서울경제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 결과 한국 기업들의 신뢰경영지수(70.54점)는 선진 초우량 기업에 비해서는 못하지만,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에선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선 것으로 평가받았다.
5개 영역으로 구성된 이번 조사 결과 여타 항목보다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비전 리더십(71.00점)
▲대외적 신뢰(71.22점)
▲경쟁우위(73.82점) 등 3개 부문이었다.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경쟁우위`의 경우 세부항목에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수준에 대해 74.24점의 평가를 내렸으며, 회사의 발전성에 대해서도 73.42점으로 비교적 높은 점수를 줬다.
`대외 신뢰도`에선 고객 지향성이 77.04점으로 세부 항목중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덕분에 평균치를 웃돌 수 있었다. 기업들이 그동안 `고객 만족 경영`을 꾸준히 실시해온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윤리지향성 측면에서도 72.42점으로 일정 수준이상에 올라선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SK글로벌 분식사건 등으로 우리 기업의 투명성에 대한 회의론이 다시 커지며 투명성 항목은 69.66점에 그쳤고, 사회공헌(68.84점)과 친환경지향(68.32점) 등에 대한 점수도 낮았다.
기부 활동 등을 통해 기업들이 왕성한 활동을 벌였지만 체계적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채 주먹구구식 경영을 펼쳐왔다는 결론이 나온 셈이다.
`비전과 리더십`은 전체 항목에선 평균치를 웃돌았지만 핵심 항목인 CEO(최고경영자)의 리더십 부분에서는 69.78점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보였다. 회사의 비전 제시(71.88점)나 전략적 계획 수립(71.56점) 항목 등은 가까스로 평균치에 다다랐다.
5개 항목중 대내적 신뢰도와 공동체 문화 형성 항목은 낙제점을 받았다.
기업 내부의 전반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서로간의 신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고, 자신의 직장에 대한 몰입도 역시 기준치를 밑돌았다.
`대내 신뢰도`에선 공정성 부분이 66.72점으로 가장 낮게 나왔고, 교육훈련 및 계발시스템에 대해서도 67.98점으로 기대 이하였다. 조직원간 커뮤니케이션도 69.16점으로 불만족스럽게 나타났고, 부서장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성도 69.08점에 불과했다.
`공동체 문화 형성`에선 조직몰입도(67.02점)의 점수가 가장 낮았다.
존경받는 기업일수록 자신의 직장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 기업에 대한 직원들의 `애정지수`는 여전히 기준 미달인 것으로 보여준 셈이다. 조직원간 공동체 의식도 68.44점에 머물렀고, 학습과 경영혁신을 추구하는 노력에서도 69.68점으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신뢰경영지수 어떻게
젊은 화이트칼라 견해 다수 반영
이번 설문조사는 100개 기업, 1,000명의 최고경영자(CEO), 임원 및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중 63개 기업 556명이 설문에 응답했다.
설문응답자는 기업체 임원 16.9%, 과장~부장급 중간간부가 37.2%, 대리와 직원이 45.9%를 차지했다. 성별로는 남성이 81.1%, 여성이 18.9%씩 구성됐다. 업무별로는 사무 및 기획 종사자가 80.5%, 연구개발 및 생산 등 기타부문이 19.5%를 차지했다. 연령별로는 30대가 49.5%로 가장 많았고, 근속연수로는 2년~5년 사이의 근로자가 32.1%로 가장 많았다.
이에 따라 이번 지수는 젊은 화이트칼라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반영됐다.
신뢰경영지수의 모형은 서울경제연구소가 신뢰경영에 관한 각종 경영학 이론을 기반으로, 한국적 현실을 적절히 감안해 자체 개발한 것이다. 이번 지수 산출을 위해 동원된 신뢰경영의 각 항목은 총 5가지 영역.
▲비전과 리더십
▲대외적 신뢰(차별적 역량)
▲대내적 신뢰(지원 시스템)
▲공동체 문화
▲경쟁 우위 등에서 각각의 하위 요소들을 측정해 종합 점수화했다.
서울경제는 `존경받는 기업을 만들자`시리즈를 통해 총 10회에 걸쳐 이번 설문의 세부 조사 내역을 소개할 예정이다.
<김영기기자 yo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