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변할까? '변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간은 타고 날 때부터 육체적으로는 DNA, 정서적으로는 '천성'이라는 게 있어서 좀체로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단정지으면 너무 가혹한 일들이 벌어진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났거나 순간의 실수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평생 주홍글씨가 새겨지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은 변한다'고 믿고 싶다. 교육이나 깊은 반성, 세월이 주는 깨달음, 가족의 사랑 등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처음부터 훌륭한 사람보다 그렇게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들의 삶이 더욱 가치있다고 믿는다. 이런 나의 생각은 어렸을 때 본 <암흑가의 두사람>(1973년작) 영향이 크다.
이 영화에는 은행강도 혐의로 수감된 지노(알랭 드롱)를 바라는 두가지 시선이 있다. 하나는, 보호 감찰관 제르망(장 가방)이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다. 제르망은 비록 잘못을 저질렀지만 진정한 반성을 통해 새로운 삶을 꿈꾸고 열심히 노력하는 지노를 응원하며 '인간은 변한다'는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매서운 시선도 있다. 지노를 끝없이 의심하는 형사 그와뜨르는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와뜨르는 지노가 또다시 범죄를 저지를것이라는 가정하에 끝없이 괴롭힌다. 아니, 그와뜨르 입장에서는 형사라는 직업에 충실한 합리적 의심을 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편집증적인 그는 지노가 잘 다니고 있는 인쇄소 사장을 찾아가고, 지노의 애인을 협박하기에 이른다. 분노한 지노는 우발적으로 그와뜨르를 살해하고 만다.
결과만 보자면, 그와뜨르의 확신이 맞았다. 지노는 은행강도에서 살인까지 저질렀으니말이다. 이 영화는 지노의 살인 사건 이후, 즉 재판과정을 매우 의미있게 보여준다. 증인으로 나온 제르망은 '잘못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며 지노의 불운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우리 모두는 한번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데, 지노는 '운없이' 그와뜨르라는 악연을 만났을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를 배심원에게 묻는다. 하지만 전과자 지노에게 자비는 없었다. 이미 판결을 내려버린 재판관은 낙서를 하고, 배심원은 졸고 있다. 결국, 지노에게는 사형선고가 내려진다. <암흑가의 두사람>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불편하고 괴롭다. 누가 누구를 벌할 수 있는지, 과연 진정한 죄인은 누구인지, 내 속에 그와뜨르는 없었는지, 뒤돌아보고 생각하게 된다. 하얗게 질린채 제르망에게 '무서워요'라고 말하며 단두대로 끌려가던 지노의 마지막 흔들리던 눈빛은 몇십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사람은 변할 수도,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변한다'고 생각해야 우리가 할 일이 있다. 뿐만 아니라 나도 용서받을 수 있다. 알랭 드롱과 장 가방이 너무 연기를 잘해서일까?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들의 범죄 소식을 접할 때마다 자꾸 이 영화가 떠올라서 마음이 아프다.
조휴정PD(KBS1라디오 '빅데이터로 보는 세상'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