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언어의 무한자극 시대

얼마 전 청소년들의 거칠어진 말에 대한 문제점을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 일상적인 대화 속에 상소리와 비속어를 많이 쓴다고 했다. 그리고 말끝마다 ‘박살 낸다’ ‘작살낸다’ ‘죽인다’ 하는 식으로 그 의미가 살벌하기 짝이 없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 쉽게 내뱉는다고 했다. 그런 지경에까지 온 여러 가지 원인과 또 그런 말투를 어떻게 순화해나가야 할지에 대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 여러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아이들의 말만 거친 게 아니다. 신문 스포츠면 전투용어 도배 당장 오늘 신문의 스포츠면을 펼쳐보라. 가장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고 또 그런 승부를 통해 일상의 페어플레이를 가르치는 동시에 즐거움을 줘야 하는 스포츠면 기사들이 스포츠 용어보다는 거의 전투적 용어로 차 있다. 지금은 시즌이 끝났지만 프로야구 기사만 해도 어느 팀이 다른 어느 팀을 이기면 어김없이 ‘폭격’ ‘격침’ ‘초토화’ ‘침몰시켜’와 같은 전투 용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제목으로 뽑아 독자들의 시선을 자극한다. 제목만 본다면 스포츠 기사가 아니라 마치 종군기자가 전하는 전쟁 현장의 기사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스스로도 알게 모르게 험한 말에 길들어져왔고 또 중독돼왔다. ‘어느 팀이 어느 팀을 이겨’와 같은 말은 너무도 심심해 기사 제목으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언어의 인플레, 혹은 언어의 무한자극 시대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의 일임에도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지위지지 않는 스포츠신문의 기사 제목이 하나 있다. 그때도 우리나라 정치권은 진보와 수구, 또 보수와 개혁, 좌파우파 논쟁이 한창이었는데 어느 한 스포츠신문이 1면 톱기사로 이런 기사 제목을 뽑았다. ‘박찬호, 좌익 타도하겠다.’ 제목만 본다면 박찬호 선수가 야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시대의 해방 공간으로 돌아가 좌우익 이념논쟁이라도 하고 있는 듯하다. 무슨 말인가 해서 기사를 보니 박찬호가 유독 왼쪽 타자들이 많은 상대팀의 방망이를 잠재울 비책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스포츠면 기사에서 쓰는 말들까지도 정쟁의 한 회오리처럼 이렇게 거칠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는 또 아무 것도 아니다. 최근 신문이며 텔레비전을 통해 정치인들이 하는 말을 듣노라면 ‘아니, 저런 말을 저런 자리에서 함부로 해도 되는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각 당의 대변인들은 정치적 사안에 대해 공방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세치 혀끝에서 나오는 말로 상대의 인격을 모독하고 조롱하며 그 뜻을 폄훼할까 하는 것에만 골몰하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이나 총리, 다른 당의 대표를 겨냥해 앞뒤 없이 내뱉은 말이 오히려 상황이 비슷한 처지의 국민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정치권 막말 국민들에 큰 상처 대표적 발언이 ‘다음 대통령은 대학 나온 대통령’ ‘학업 콤플렉스’ 같은 말들일 것이다. 그런 말들은 집안이 가난해 더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사람들과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스스로 학업을 포기한 우리 시대의 많은 ‘형님과 누님’들의 숭고한 희생까지도 가차 없이 콤플렉스로 매도하고 규정짓는다. 영화 속 깡패들의 말은 어휘가 거칠어도 저토록 야비하지는 않다. 또 청소년들이 쓰는 욕설과 비속어도 거칠기는 해도 저만하지는 않다. 아이들의 말이 거칠다고 걱정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말 속에는 그보다 더 음흉하고 무시무시한 뜻을 담고 있는 어른들. 특히 이 나라를 이끌어가겠다는 정치인들의 말은 대체로 그 뜻이 더 더럽고 야비하다. 대체 누가 이들에게 책임지지도 못할 험한 말들을 함부로 해도 될 권리와 면허를 주었는가.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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