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고무줄 양형기준 바로잡자] <2> 증권·금융범죄

'최대 징역15년' 기준 맞춰 처벌 강화해야<br>집행유예 선고 너무 많아 죄의식 무뎌져<br>조직·계획 범죄 가중 처벌조항 만들고 실패한 주가 조작도 사법 처리 필요

지난 3일 기소된 대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이 대거 가담한 인터넷 주가조작 카페 회원들이 메신저로 작전을 모의한 내용.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해 증권·금융범죄를 최대 징역 15년까지 선고할 수 있는 양형기준을 확정했다. /사진제공=서울중앙지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카페를 만들어 놓고 계획적으로 주가조작에 나섰던 작전 세력 20여명이 검찰에 적발돼 지난 3일 재판에 넘겨졌다. 충격적인 사실은 작전의 대부분을 전문 주가 조작꾼이 아니라 대학생이나 교사, 회사원, 간호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저질렀다는 점이다. 이들을 이끈 이른바 주식 고수 '김작가'는 "금융감독원이 조사 들어와도 겁 안 나는 세력"이라며 증권범죄자의 무뎌진 죄의식을 드러냈다. 검찰은 "사회 전반에 주가조작이 만연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부 말에 연이어 터진 저축은행 사태는 금융기관의 도덕성과 신뢰에 치명상을 입혔다. 잘 나가던 저축은행 회장들은 많게는 수천억원의 고객 예금을 마음대로 쓴 혐의로 형사 처벌을 받았다. 이들의 편의를 봐준 정ㆍ관계 인사와 감독당국 관계자도 줄줄이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이를 계기로 주가조작 같은 증권범죄나 금융기관 임직원이 부정한 청탁 명목으로 돈을 받는 금융범죄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직접적인 피해는 물론 다수의 간접 피해까지 양산하는 이들 범죄를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근혜 정부 역시 출범하자마자 주가조작 같은 증권범죄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천명했다.

이 같은 사회 인식을 바탕으로 사법부도 지난해 증권ㆍ금융범죄에 대해 최대 15년까지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는 양형기준을 만들었다. 하지만 일선 법원이 수위를 높인 양형기준에 맞춰 실제 판결을 내릴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지난해 6월 최종 의결하고 같은 해 7월 1일부터 시행한 '증권ㆍ금융범죄 양형기준'에는 증권ㆍ금융범죄 엄벌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발맞추려는 시도가 담겨 있다. 최종 의결된 양형기준은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이나 시세조종, 부정거래 같은 자본시장의 공정성을 흔드는 증권범죄를 사기범죄에 준해 형량 수위를 정했다.

증권ㆍ금융범죄로 챙긴 이익이 50억원 이상 300억원 미만이면 징역 11년까지 내릴 수 있고, 300억원 이상이면 최고 징역 15년을 선고할 수 있게 했다. 일반 사기 범죄의 경우 50억원 이상 300억원 미만은 최대 9년, 300억원 이상은 13년을 양형기준으로 정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기범죄보다 2년 정도 형량이 더 많은 것이다. 5억원 이상 범죄는 기본적으로 실형 선고를 권고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자본시장의 투명성을 침해한 범죄도 강화된 양형기준을 마련해 주식 공시의무 위반은 최대 2년, 허위 재무제표 작성과 공시ㆍ회계정보 조작 등은 최대 3년의 징역형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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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가중요소도 손질했다. 자본시장 공정성 침해 범죄의 경우 특별 양형 인자인 가중요소를 종전인 '대상 기업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을 경우'에서 '실제 주가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거나 불공정거래의 규모가 매우 큰 경우'로 바꿨다. 피해의 범위를 기업에 국한시키지 않고 시장 전체로 본 것이다. 한국거래소나 금융위원회 같은 규제기구로부터 징계나 과징금을 받은 전력도 전과로 인정해 가중처벌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양형기준에는 금융기관 임직원이 돈을 받거나 돈을 받고 알선을 했을 때 공무원이 저지른 범죄에 준해 엄벌한다는 기준도 담겼다. 금융기관 임직원의 알선이나 알선수재의 경우 받은 돈이 3,000만원만 넘어도 최대 6년, 5억원 이상이면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다.

문제는 일선 법원의 의지다. 양형기준이 강화됐다고는 하지만 과거 판례에 비춰 볼 때 처벌 수위가 높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양형위가 발간한 연감에 따르면 2006년 1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전체 796건의 증권ㆍ금융범죄 선고 건수 가운데 73%인 580명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고 실형은 27%(216명)에 그쳤다. 양형기준이 확정되지 않은 시기의 통계지만 법원이 그 동안 증권ㆍ금융범죄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일선 법원이 달라진 사회 분위기를 감안해 증권ㆍ금융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양형기준에 얼마만큼 근접시키느냐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거래소나 금융감독원 같은 자본시장 관리감독 기구의 관계자들은 높아진 양형기준에 맞게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증권범죄 특성상 피해자가 다수라 특정이 잘 안 돼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운 점은 이해한다"면서도 "집행유예 비율이 높으면 범죄자들이 '남는 장사'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만큼 처벌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실형권고 규정의 실효성 강화를 위해서도 처벌 가중요소에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범행한 경우'를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을 양형위에 전달했다.

증권범죄의 경우 범죄로 얻은 이득액을 기준으로 형량을 정하는 게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시세조종은 실패해도 죄질 자체가 무거워 이득액을 기준으로 형량을 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의견을 양형위에 전달했다.

지난해 3월 양형위가 개최한 공청회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왔다. 고창현 변호사는 "한 대기업 직원이 '북한 경수로가 폭발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주가를 조작해 시세차익 2,700만원을 얻었다"며 "범행 수법이 매우 불량하지만 이득액이 1억원 미만이라 양형기준상 처벌 상한이 2년 6월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범죄 이득액은 주가조작 행위자의 의도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증권 종목, 시장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어 기준으로 삼기 부적당하다는 의미다. 미국이나 독일, 일본은 범죄 이익 액수에 따라 법정형의 차등을 두고 있지 않다.

조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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