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11월 25일] <1559> 빅센호사건


SetSectionName(); [오늘의 경제소사 11월 25일] 빅센호사건 권홍우편집위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1836년 11월25일, 흑해의 항구, 수주크 칼레. 러시아 군대와 경찰이 정박돼 있는 영국 상선 '빅센'호를 덮쳤다. 조치가 따랐다. 몰수 및 억류. 영국은 터키 주재 공관을 통해 즉각 항의했으나 러시아는 요지부동. 오히려 한걸음 더 나갔다. 빅센호에 실린 화물이 반란군을 지원할 화약과 대포였다는 점을 들어 영국을 압박했다. 영국은 혼란에 빠졌다. 두 가지 정치적 판단 때문이다. 영국은 무엇보다 동맹국인 러시아가 적대적 세력으로 돌아설 경우의 수를 따졌다. 그래서 대응이 늦었다. 두번째로 인도의 안정적 지배를 우려했다. 러시아가 흑해를 장악할 경우 페르시아(이란)를 거쳐 인도까지 침공할 수 있다는 점을 꺼렸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부동항 진출, 20세기 소련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두려움은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사건의 배후에는 영국 극우파가 있다. 러시아를 시험하고 자극하기 위해 모험자본을 모으고 항해 강행을 사주해 목적한 대로 사건을 일으켰다. 사건은 금방 잊혀지며 지나갔어도 후유증은 컸다. 영국이 수많은 사상자를 낸 크림전쟁에 적극 참전한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명분도 부족하고 국익에 반하는 전쟁.'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언론 탓이 크다. 러시아의 터키 진출과 이란을 거친 인도 지역 점령 우려가 연일 영국 신문에 실렸다. 인도인들은 더욱 거센 압박을 받아 식민 지배에 시달렸다. 빅센호 사건으로부터 한 세기 반이 지난 오늘날, 충돌과 대립을 원하는 세력의 존재는 지난날의 이야기일 뿐일까. 안보를 팔아 생존하는 사람도, 전쟁을 원하는 사람도 그대로인 것 같다. 혼돈 속에서도 분명한 게 하나 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해치우려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점이다. 그 실행은 보다 위험하다. 리스크는 우리의 숙명인가.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