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국민노릇 하기 정말 힘들다

이현우 <논설위원>

[목요일 아침에] 국민노릇 하기 정말 힘들다 이현우 hulle@sed.co.kr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 9단으로 불렸다. 바둑에서 9단이면 입신(入神)의 경지를 말한다. 그럼 노무현 대통령은 몇 단쯤 될까. 아마도 김 전 대통령들과 같은 반열이거나 고수이지 그 아래는 아닌 것 같다. 수읽기와 국면전환의 승부수에서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발군의 감각과 실력을 보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승부수는 두 전 대통령과 달리 자신을 버림으로써 이기는 패턴이다. 과거 총선에서 지는 게 뻔한 싸움인 부산 출마를 고집한 것이 그렇다. 그러나 자신을 내던진 작은 패배는 후에 큰 승리로 돌아왔으니 결국 제대로 된 수읽기와 효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패턴의 승부수는 대통령이 돼서도 이어진다. 취임 1년차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서 측근들의 비리로 위기에 몰리자 재신임 패를 꺼냈다. 국민들은 도덕성을 제일로 내세웠던 참여정부의 표리부동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지만 재신임으로 가는 것까지는 원치 않았다. 그 과정에서 벌어질 혼란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임기 2년차인 지난해에는 총선을 앞두고 다른 카드가 던져졌다. 탄핵정국이다. 대통령은 선관위의 지적과 야당의 탄핵경고에도 불구하고 선거개입 발언을 거듭했다. 야당은 탄핵을 결의하고 의기양양했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변했다. 여론의 역풍이 엄청났고 총선 결과는 여당의 대승이었다. 대통령은 스스로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승부수를 던진 셈이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행위가 못마땅하긴 했지만 탄핵까지 갈 일은 아니라고 여긴 것이다. 재신임 때와 같이 '미워도 다시 한번'이었고 결국 두 번의 승부수는 기막히게 적중했다. 노 대통령이 임기 3년차에 또다시 승부수를 던진 것 같다. 이번에는 연정(聯政) 문제다. 대통령은 대국민 편지에서 이에 대한 공론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를 계기로 국정난맥에 쏟아지던 여론의 관심은 급격히 개헌과 권력구조 개편 쪽으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국면전환을 겨냥한 것이라면 일응 효과를 거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국민의 희망과는 동떨어져 있는 대통령의 편지를 읽어야 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불편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지금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경제회생이다. 대통령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를 경제 살리기에 두겠다고 다짐했지만 상황은 악화일로다. 경제성장률 목표는 5%에서 4%로 하향 조정됐다. 한은은 한발 더 물러나 3.8% 전망을 내놓았다. 그래서 대통령의 '경제 올인'이 말뿐이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런 판에 경제회생 의지를 다시 강조하기는커녕 느닷없이 정국불안을 초래할 문제를 거론하고 나섰으니 과연 경제가 괜찮아질까 하는 불안감이 커지는 것이다. 정국불안은 정책 불확실성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든다. 그러면 기업과 소비자들을 더욱 움츠러들고 경제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게 뻔한 것 아닌가. 연정 거론은 시기ㆍ상황면에서도 부적절하지만 논리에도 무리가 있다. 대통령의 편지는 한마디로 여소야대와 헌법의 결함 때문에 경제 살리기 등 국정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소야대와 헌법 탓으로 돌리는 것은 핑계로 들린다. 지난 총선에서 여당은 경제회생을 위해 표를 달라고 호소했다. 국민들은 88년 이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여대야소, 그것도 과반수 의석이 넘게 힘을 실어줬다. 그런 정부ㆍ여당이 지난 1년 동안 뭘 했나. 그들이 잘했더라면 재보선에서 그렇게 참담한 패배를 당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또 여소야대를 탓하니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국민 노릇 하기 정말 힘들다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지금의 국정위기는 다름아닌 정부 여당이 자초한 것이다. 국민의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간 결과다. 이제 네 탓은 그만하고 국민이 원하고 고통을 덜어주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 첫걸음은 정치학 책보다 경제학 책 원론을 읽어보는 일에서 시작돼야 한다. 입력시간 : 2005/07/0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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