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3세 경영시대


임종건 언론인


대한항공의 '땅콩 리턴' 사건을 계기로 3세 경영시대가 조명을 받고 있다. 일천한 한국 자본주의 역사에서 3세 경영은 '100년 기업'으로 향하는 최종적 관문이다. 두산그룹처럼 100년이 넘어 4세 경영시대를 맞고 있는 기업도 있지만 지난 1930년대 이후 창업한 삼성·현대·LG 등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3세 경영에서 성공해야 '100년 기업'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다.


풍요 속에 자라 이웃 배려·절제 몰라

1세대 기업인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었다. 고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자서전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제목이 1세대 경영인들의 인생 역정이었다.

대부분의 2세대는 1세대가 겪었던 도전과 시련의 조력자이거나 동참자들이었다. 그 시절 한국에는 가난이 만연했고 1세들 스스로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기업을 세웠다. 2세들은 개인적으로는 가난을 겪지 않고 자랐더라도 시대의 현상인 가난을 보면서 성장했다.

문제는 그다음의 3세들이다. 3세 시대에는 1세들의 자취는 거의 없었다. 국가적으로도 절대적 가난은 상당 부분 극복돼 그들 눈에 빈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풍요를 누리기만 하면 됐다. '1%의 문화' 나아가 '0.1%의 문화'는 그들만의 향유물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핵가족시대에 태어나 애지중지 떠받듦 속에서 자랐다. 교육에서 해외유학은 필수였다. 경쟁·출세·금력 지향의 교육 환경에서 이웃, 가난 등에 대한 배려 같은 인성교육이 스며들 여지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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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대들은 1세대 때보다 촘촘해진 상속·증여세의 그물을 피해 3세대에게 재산을 상속해주기 위해 온갖 불법과 편법을 동원했고 그 과정에 큰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그 길에는 어느 재벌도 예외가 없었고 자녀 수의 많고 적음도, 자녀의 적성도 상관이 없었다.

피붙이가 아니면 회사를 남에게 빼앗기기라도 하는 듯이 자녀들을 경영에 참여시켜 초고속 승진을 통해 사장 회장에 앉혔다. 공기업 성격의 포스코를 제외한 10대 기업 아니 100대 기업 중에 피붙이 아닌 사람에게 기업 경영을 맡긴 경우가 있는지 모르겠다. 한두 재벌이 한 수법을 교본 삼아 모두 따라 하고 있다. 왜 나만 안 되냐고 하면 법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땅콩 리턴'의 장본인 조현아 부사장도 그중 하나였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자녀의 일탈에 대해 "제가 자식을 잘못 가르쳤다"고 했다. 자식을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이 어디 조 회장뿐일까만 이런 경영 관행의 결과로 국민들이 피곤해질 일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공동체 위해 기업 대오각성 필요

정치에서는 왕조제가 대의제로 대체됐지만 한국에서 대통령은 아직도 '제왕적' 대통령 소리를 듣고 있다. 기업 쪽에서는 '황제적 경영'이 아무렇지 않게 운위된다. 대통령은 5년의 임기가 지나면 평민이 되지만 기업 회장은 종신이다. 기업 내에서는 제왕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들에 대해서는 최소한 야당·언론과 시민단체 등 국민적 감시가 있다. 그러나 금력을 앞세운 기업의 로비는 이런 감시를 무력화시킨다. 광고에 목을 매는 언론들도 기업의 감시자 역할을 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욕망대로 사는 것은 절제를 모르는 삶이다. 그런 삶은 남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기업의 절제 없는 탐욕과 일탈이 우리 사회를 불신과 양극화로 병들게 한다. 자본주의의 위기의 근원도 거기에 있다. 공동체적 가치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기업의 대오각성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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