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장영자와 저축은행


지난 1982년 '단군 이래 최대의 금융사기 사건'이 발생한다.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 광업진흥공사 사장의 처제인 장영자씨는 남편인 이철희 전 중앙정보부 차장과 같이 기업에 돈을 빌려준 뒤 몇 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 사채시장에서 할인한 뒤 또 다른 기업에 대출하고 어음을 받아 할인하는 수법을 썼다. 이렇게 현금화한 것이 7,111억원의 어음 중 6,404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담보도 없는 기업에 수백억원씩의 대출을 하도록 은행장을 움직인 것이나 기업들에게 대출금의 몇 배나 되는 어음을 받는 과정에서 권력개입설이 파다했다. 결국 공영토건이 어음사기를 당했다는 진정서를 검찰에 낸 뒤 사기 폭탄이 터져 기업들이 부도나고 증시는 폭락하고 사채시장은 마비됐다. 어음(1,600억원대)을 샀던 소액 투자자들의 피해도 컸다. 10년 가까이 옥살이를 한 장씨 부부 외에도 은행장들이 구속되고 법무장관과 검찰총장ㆍ안기부장 등이 옷을 벗는 등 파장이 컸다. 당시 재무부 사무관이던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은행장이 재무부 사무관을 만나기 위해 청사에서 기다리던 시절"이라며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의 폐해가 터지며 '5공정권의 정의사회 구현' 구호가 거짓으로 드러났던 사건"이라고 기억했다. 새삼스레 장영자 사건을 꺼낸 것은 최근 핫이슈로 떠오른 저축은행 비리사태 때문이다. 권력이 은행 돈을 쌈짓돈처럼 쓰던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은 금융기관의 자율성과 투명성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하지만 비리에 얽힌 추악한 뒷거래와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 공방은 여전하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감사원 감사위원이 부실 저축은행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전직 금융감독원장마저 이들을 감싸다 검찰 소환을 앞둔 상황에서 청와대 등 여권이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의 책임이 크다"고 강변하는 것은 볼썽사납다. '잘되면 내 덕,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이중적 마인드이거나 무능함을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권력과 금감원 인사의 낙하산 관행이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보다 심해졌다는 것도 부인하기 힘든 현실이다. 모쪼록 검찰은 특검 얘기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수사하고 정치권은 이달 말 저축은행 국정조사에서 금융감독 책임문제를 결론짓고 10년 뒤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정책대안에 합의하기를 바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