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액권 발행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새 지폐의 인물초상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김구ㆍ정약용ㆍ이순신ㆍ광개토대왕 등 그동안 단골 후보군이었던 인물 외에도 신사임당ㆍ장영실 등 여성ㆍ과학계 인물도 거론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화폐가 통합되면서 기존 화폐인 마르크(Mark)화가 유로화로 교체될 때 많은 독일 사람들은 몹시 아쉬워했다고 한다. 2차대전의 패전국으로 전쟁의 폐허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낸 저력이 바로 이 화폐 속에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독일의 화폐는 단순히 돈이 아니라 독일인의 자긍심이며 역사 그 자체였다.
독일 화폐 중 우리나라 만원권에 해당하는 10마르크짜리 지폐를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이 지폐에는 위대한 왕도, 유명한 예술가도 아닌 빵모자를 쓴 한 초로의 남자가 있다. 프리드리히 가우스(Friedrich Gauss)라는 수학자이다. 가우스의 초상화 왼쪽에는 정규분포곡선이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측량기구인 트랜싯과 삼각측량 성과도가 그려져 있다.
한 나라의 상징물인 화폐에까지 수학자ㆍ공식ㆍ측량장비를 그려넣는다는 것은 그만큼 과학을 중시한다는 뜻이니 가히 ‘과학하는 나라’답다.
이제 우리 현실을 돌아보자. 2007년도 서울대 수시모집 합격생 중 법대ㆍ의대ㆍ경영대의 경우 거의 전원이 등록을 했으나 공대ㆍ자연대ㆍ농생대 등의 경우는 11%나 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공계 고급인력 10명 중 7~8명은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 잔류할 계획이고 귀국자 세명 중 한명은 기회가 되면 다시 출국할 예정이라는 보고서도 있었다. 이대로라면 수년 안에 ‘IT 강국’이라는 말이 빛바랜 구호로 남은 채 우리의 과학수준과 기술력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칠지 모른다.
20세기를 마감하던 지난 99년 ‘타임스(The Times)’의 편집자들은 과학자 아인슈타인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선정하고 인류ㆍ문명ㆍ정치ㆍ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규정했다.
과학은 그 나라의 미래 정도가 아니라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인프라이다. 언제까지 이공계 기피를 걱정만 할 것인가. 새 돈에는 사실상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새로운 인물이 담길 예정이다. 과학계 인사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물로 선정해 이공계 지원자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방안을 제안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