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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자들의 서원을 팠더니 느닷없이 불교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조선 중종 때 활동한 유학자 조광조(1482~1519)를 추존해 건립한 서울 도봉구 도봉서원 터에서 고려시대 불교 의식에 사용된 국보·보물급 유물 77점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문화재청과 발굴조사단인 서울문화유산연구원은 2012년 도봉서원터를 발굴조사 결과 수습한 이들 불교용구 관련 유물을 21일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언론에 공개했다.
성리학을 신봉하며 유학자들을 위해 존재했던 서원 터 자리에서 불교유물과 공양구가 발견된 것은 뜻밖이다. 이유인 즉 원래 조선 초까지 영국사(寧國寺)라는 사찰이 있던 자리에 1573년 도봉서원이 건립된 것. 발굴조사단은 서울특별시기념물 28호인 '도봉서원과 각석군(刻石群)' 복원정비 계획에 따라 시굴조사를 거쳐 2012년 5~9월 본격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도봉서원 터의 중심부 격인 제5호 건물터(동서 12.63m, 남북 12.74m)는 '영국사' 사찰의 중심 건축물인 금당 혹은 대웅전을 그대로 활용됐다는 사실도 발굴조사단이 밝혀냈다. 바로 이 건물터 아래에서 영국사를 세울 당시 부처를 공양하고자 묻은 것으로 보이는 불교 용구를 넣은 청동솥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부처를 모신 금당 자리에 서원을 그대로 축조한 것은 조선의 '억불숭유' 정책의 한 단면을 짐작하게 한다.
이 청동솥에서 쏟아져 나온 66건 77점의 유물은 불교 밀교 의식에서 중요한 법구(法具)였는데, 그 중 금동으로 제작된 삼지창 무기 형태의 금강저(金剛杵)와 이 무기 끝에 방울을 단 금강령(金剛鈴)이 눈길을 끈다. 금강령에는 불법 수호신들은 오대명왕상(五大明王像)과 4방위의 신인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새겨져 있는데 이런 문양이 국내에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흔들면 소리가 나게끔 방울 안에 매단 탁설(鐸舌)을 물고기 형태로 제작한 것도 드문 예다. 따라서 그간 발견된 고려시대 동일한 유물 중에서도 조각이나 제작 수법이 가장 뛰어난 수작으로 평가된다. 이 외에도 함께 발견된 향로와 뚜껑 있는 합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유적의 시대와 성격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조사단은 "이들 불교공양구가 영국사와 관련된 유물임은 확실하지만 앞서 고려시대에 존재했음이 확인되는 인근 도봉사(道峯寺)라는 사찰과 더욱 밀접한 관련을 지녔을 것"이라며 "이번에 발견된 청동제기에서 '도봉사'라고 새긴 글자가 확인된 것으로 보면 영국사 창건 혹은 중건에 즈음해 도봉사에서 이들 공양품을 가져온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조사단은 "출토된 유물들이 도봉서원 주변 이 지역에서 불교가 매우 번성하였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화려하고 뛰어났던 고려 시대 금속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