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정말로 잘 사는 길은
남문현 moonhn@sed.co.kr
‘근면ㆍ자조ㆍ협동’
이는 지난 70~80년대 한국사회의 절대 코드를 반영한 새마을 운동의 기본 이념이자 정신이었다. 각 학교 교실의 검은 칠판 위나 공공기관, 기업체 사무실 등의 가장 좋은 위치에 어김없이 검은 붓글씨체로 쓰여져 작은 액자에 걸려 있던 이 새마을 정신은 다소 근엄한 느낌으로 그때 국민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개발중심 시대에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라는 새마을 운동의 핵심적 실천 요소이기도 했다. 이 정신은 당시 정치환경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한국경제 사회 전반에 혁명적 변화와 함께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비록 그 실행과정에서 성장의 열매를 국민들 모두가 공정하고 골고루 나누려는 ‘부민(富民)’보다는 ‘국가가 잘살아야 국민도 잘살 수 있다’는 ‘부국(富國) 우선주의‘가 횡행하며 부의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기는 했지만.
‘잘살아보자’는 일념은 불평등ㆍ불공정 등 당시 숱한 경제 사회적 문제를 뛰어넘게 만든 절대적 좌표였다. 그때 논리로 잘살 수 있는 최대의 지름길은 수출이었고 모든 국민들은 그렇게 믿고 실천해나갔다.
그렇게 해서 71년 10억달러이던 수출규모가 6년뒤에는 100억달러로 껑충 뛰는 획을 그었다. 5일에는 마침내 세계 11번째로 3,000억달러에 올라서는 엄청난 성과를 보였다.
90년대 이후 심화되는 통상압력, 높은 환율과 유가, 원자재가 등 3고(高) 현상을 뛰어넘으면서 모든 경제주체들이 똘똘 뭉쳐 일궈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을 만한 기록이다.
이는 그리도 외쳐왔던 ‘잘사는’ 수준에 상당히 도달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비록 1인당 국민소득은 여전히 2만달러를 밑돌고 있지만 경제규모는 명실공히 세계 주요국 수준으로 당당히 올라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수 국민들은 여전히 스스로를 ‘잘사는’ 수준으로 느끼지 않고 있다.
통계청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중 현재의 생활에 만족을 느끼는 사람은 10명 중 3명에 불과하고 특히나 국가의 중심 축인 중간층도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2003년 56.2%에 달했던 중간층이 53.4%로 줄었고 하층은 그만큼 늘어난 45.2%(2003년 42.4%)로 나타났다.
계층구분이 자의적 잣대를 기준으로 이뤄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현상은 국민들의 심각한 경제적 불안과 위기의식을 잘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많은 국민들이 희망을 시나브로 잃어가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예전과 달리 수출의 절대적 기반이자 생산의 3대 요소인 노동ㆍ자본ㆍ토지 어느 것 하나 안정돼 있지 못하다.
시중 부동자금은 그 규모가 500조원을 훨씬 넘을 만큼 제 갈 길을 못 찾고 있고 기업들은 적극적인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토지는 특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과 함께 투기대상으로 변모한 지 오래다. 노동은 어떤가. 수요와 공급시장의 불일치로 넘치는 실업자는 해소될 기미가 별로 없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조는 툭하면 ‘전국 총파업’을 외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많은 국민들이 더 답답해 하는 것은 이런 현상들을 제대로 풀고 극복해낼 수 있는 국가적 리더십 마저 실종됐다는 점이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최근 “국민의 사기가 이렇게 떨어진 적이 없었다. 국민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비전이 간절하다”고 토로할 만큼 국민들은 현재 리더십 부재로 인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21세기의 ‘잘사는’ 기준은 물질보다는 삶에 대한 안정감과 희망 등 정서적 가치 쪽에 많은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경제적 안정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정치권이나 관료 등 각 그룹들이 당리당략과 보신주의, 정치적 논리에서 벗어나 소신과 미래 가치가 제대로 담겨 있는 정책을 만들고 집행함으로써 국가적 리더십을 살려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이 살아나야만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 수출 5,000억달러 시대는 물론 삶의 질을 더 향상시킬 수 있는 미래를 빨리 열도록 힘껏 뛰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이번에는 ‘정말로, 제대로 잘살기’ 운동을 한번 펼쳐볼 수 있으면 좋겠다.
입력시간 : 2006/12/11 16: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