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일을 낼 테니 지켜봐 주세요."
추석을 전후해 국내에 머물다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배상문(28·캘러웨이)이 어머니 시옥희(58)씨에게 남긴 말이다. 그리고는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으로 약속을 지켰다.
배상문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첫 승 이후 오랜 침체에서 벗어났다. 더욱이 2014-2015시즌 개막전을 제패하며 힘찬 재도약을 예고했다.
배상문은 13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의 실버라도CC(파72·7,203야드)에서 열린 프라이스닷컴 오픈(총 상금 600만달러) 4라운드에서 버디 3개와 보기 4개로 1타를 잃었지만 고비마다 파 세이브에 성공하며 최종합계 15언더파 273타의 성적으로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 5월 바이런넬슨 챔피언십 이후 1년5개월 만에 거둔 투어 통산 두 번째 우승. 배상문은 108만달러(약 11억6,000만원)라는 거금을 상금으로 받았고 내년 4월 열리는 시즌 첫 번째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 출전권도 확보했다. 2년간 투어 출전권을 보장받아 안정감 속에 활동하게 됐으며 새 시즌 첫 대회였던 만큼 당연히 상금과 페덱스컵 포인트 랭킹 1위에 나섰다.
수확이 많았던 우승이지만 무엇보다 큰 소득은 자신감 회복이었다. 2012년 미국 무대에 진출한 배상문은 지난해 첫 승을 신고하는 등 연착륙에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17개월 동안 원인 모를 부진에 빠졌다. 이 대회 전까지 36개 대회에 출전한 그는 단 한번도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컷오프된 횟수만 절반인 18차례에 달했다. 배상문은 "첫 우승을 하고 나서 너무 성적이 안 좋아 마음고생이 정말 심했는데 이렇게 씻어버릴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롭고 기분이 좋다"며 기뻐했다. 나흘간 16차례 플레이한 파5홀에서 11개의 버디를 잡아냈다는 점에서 샷 감각과 경기운영 능력 회복도 감지된다.
이날 우승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전날 3라운드에서 4타 차 단독 선두에 올라 낙승이 예상됐으나 후반 샷 난조로 다소 가슴을 졸여야 했다. 10번홀까지 1타를 줄인 배상문은 11번홀(파3) 보기를 12번홀(파4) 버디로 만회했다. 앞서 경기하며 2위에 자리한 헌터 메이핸(미국)이 15번홀(파3)에서 1타를 잃으면서 2위권과의 격차를 한때 5~6타로 벌렸다. 문제는 역시 부담감이었다. 정상 고지가 가까워지면서 티샷이 흔들린 배상문은 13번과 14번홀(이상 파4)에서 연속 보기를 적어내 먼저 경기를 끝낸 스티븐 보디치(호주)에게 2타 차까지 쫓기게 됐다. 16번홀(파5)에서도 티샷을 러프로 보내 세 번째 샷마저 그린에 올리지 못한 그는 어프로치 샷을 홀 50㎝에 붙인 뒤 파로 막아 위기를 넘겼다. 17번홀(파4)에서도 그린을 놓쳤지만 무난히 파를 기록한 배상문은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1.2m 버디 퍼트가 살짝 빗나갔지만 2위 보디치(13언더파)를 2타 차로 따돌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메이핸은 레티프 구센(남아공), 마쓰야마 히데키(일본) 등과 함께 공동 3위(12언더파)로 대회를 마쳤다.
배상문은 2008년과 2009년 2년 연속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상금왕에 오른 뒤 2010년 일본 무대(JGTO)에 진출해 2011년 상금왕에 등극한 선수다. 일본에 안주하지 않고 PGA 투어 퀄리파잉(Q)스쿨에 도전해 2012년 데뷔한 그는 이번 우승으로 8승의 최경주(44·SK텔레콤), 2승의 양용은(42)에 이어 세 번째로 PGA 투어에서 2승 이상을 올린 한국 선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