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0월19일, 영국이 경사를 맞았다. 북해 포티지역에서 유전을 찾아낸 것. 노르웨이와 덴마크 지역에서 원유가 발견된 적은 있어도 영국 해역에서 기름이 솟은 것은 사상 최초. 본격 발굴에 나선 지 15년 동안 33번째 시추에서 얻은 결과여서 기쁨이 더욱 컸다. 북해에 원유가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온 19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32년 만의 결실이다. 횡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브렌트 유전을 비롯한 거대 유전이 속속 터졌다. 유전 규모도 ‘경제성 있음(economic)’과 ‘큰(big)’ ‘대형(large)’ ‘초대형(giant)’을 넘어 거대급(elephant)이었다. 영국이 유전을 찾아낼 수 있었던 비결은 끈기와 과학기술. 북해의 거친 강풍과 파도를 견디며 해저 수백미터를 시추할 수 있는 신기술과 첨단 장비 덕분에 유전이 뚫렸다. 북해유전은 영국 언론의 표현대로 ‘신의 축복’이었다. 해마다 30억~40억 파운드 적자를 기록하던 재정이 원유가 본격 생산된 후 60억 파운드 흑자로 돌아섰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1976년)도 석유 수출 덕분에 재빨리 갚을 수 있었다. 대처 수상의 개혁도 북해산 원유 덕분에 힘을 얻었다. 새로운 산유국 영국의 등장은 국제유가를 크게 떨어뜨려 배럴당 34달러였던 유가가 1980년대에는 10달러선까지 내려갔다. 요즘도 북해에서는 영국과 노르웨이 등 7개국이 운영하는 131개 유정이 원유와 가스를 뽑아내고 있다. 문제는 고갈이 머지 않았다는 점. 2020년이면 바닥을 보일 전망이다. 생산도 1990년 이미 정점을 지났다. 영국조차 원유 순수입국으로 돌아섰다. 북해유전이 선사한 축복은 이제 재앙이다. 나날이 치솟는 유가에는 자원고갈이라는 저주가 담겨 있다. 파티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