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선(43ㆍ사진) 노무라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전무)는 "구조적 요인으로 저금리는 오는 2015년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고 한국과 미국의 국채수익률도 비슷한 수준으로 수렴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인구구조 등의 변화로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만큼 재정ㆍ금융ㆍ외환 등 단기성과를 노린 거시정책 수단보다 경제의 구조개혁, 실물경기 제고 방식을 통해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전무는 17일 서울경제신문의 '저금리, 경제 패러다임 바뀐다' 시리즈에 맞춰 단독 인터뷰를 갖고 이 같은 진단을 내놓았다.
저금리 기조 2015년까지 지속
권 전무는 먼저 현재의 저금리 기조가 어떤 이유에서 발생하고 있는지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저금리가 경기순환적 측면에서 발생했는지, 아니면 구조적 측면에서 촉발됐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현재의 저금리는 구조적 이유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금리 양상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경기순환적 흐름에서의 저금리라면 금리는 양적완화 등의 여파로 다시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현재는 구조적 측면에서 진단해야 앞으로의 경제정책이나 금융산업 등 전반의 전략을 수립할 때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 전무는 현재의 저금리는 구조적 원인에서 나타났다고 해석했다. 저금리가 구조적인 문제로 진행되는 첫 번째 이유로 생산가능인구 증가율의 하락을 꼽았다. 생산인구 증가율이 감소하면 잠재성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실질금리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반면 인구 구성을 보면 앞으로 5년간 생산가능인구는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간다. 국내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총 투자보다는 총 저축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투자보다는 저축의 요인이 커져 금리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권 전무는 "유소년이나 청년인구가 많을 때 투자가 높은데 우리나라도 30년 전에 그랬고 인도네시아 등 현재의 동남아시아 국가의 인구 구조도 과거 우리나라와 같다"며 "20대 이하의 비중이 높을 때 투자가 활발하고 성장세가 커져 금리도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20~30년간 투자가 활발해지고 성과가 나타나면서 점차 투자의 필요성은 줄게 된다. 권 전무는 "과거 투자한 것으로부터 배당이나 이익을 거둬들이는 시기가 생산인구가 정점에 다다를 때인데 한국이나 일본ㆍ대만ㆍ홍콩ㆍ싱가포르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면서 "인구 구조는 쉽게 바뀌기 힘든 만큼 잠재성장률의 하락, 저금리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베이비부머도 저금리에 역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늘어나면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주는 채권의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도 저금리가 지속될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권 전무는 "2030년까지 국민연금 납부액이 연금 수급액을 계속 웃돌면서 기금의 순자산이 국내총생산(GDP)의 100%(현재 30% 수준)까지 늘어날 것"이라며 "설령 국민연금이 채권 투자비중을 줄이더라도 기금규모가 급속히 늘기 때문에 채권 투자규모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컨대 앞으로 5년간 세금을 납부하는 사람(생산가능인구)이 세금을 필요로 하는 사람(노령자나 어린이)보다 많아지게 돼 재정수지는 좋아지고 정부의 채권공급이 급속히 늘지 않는 반면 국가신용등급 등의 상승으로 외국인투자가의 원화채권 투자가 늘어난다는 얘기다. 권 전무는 "채권시장의 수요가 많아질수록 금리가 저금리 흐름을 탈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거시정책 수단보다는 구조개혁 등에 초점
저금리 기조가 고착화하면 곧 정책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단기적인 성장률은 통화ㆍ재정ㆍ금융정책을 통해 올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 부문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꾸준히 나올 수 있는 성장률이 필요합니다."
통화ㆍ재정ㆍ금융정책 등의 거시정책 수단으로 단기간에 성장률을 올릴 수는 있지만 현재의 '구조적인 저금리-낮은 잠재성장률' 상황에서는 거시 카드가 자칫하다가는 한계와 부작용만 양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 전무는 "잠재성장률은 통화나 재정ㆍ외환 등의 수요를 불러일으키는 거시 수단만으로 올리기에는 힘든 상황이 됐다"면서 "물가만 오르고 다시 낮은 성장률로 회귀할 수밖에 없는 만큼 경제구조나 생산성 개선 등이 뒤따르는 정책적 수단의 동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10년 평균 성장률을 보면 제로금리를 실시했던 나라들도 결국에는 거시 수단을 동원한 정책이 단기간에 효과는 냈지만 다시 회귀했다는 얘기다.
권 전무는 "잠재성장률을 높이고 저금리에서 벗어나는 게 바로 구조개혁"이라면서 "출산 및 이민정책, 노동시장 개선, 기술개발, 에너지 효율성 증진, 교육제도 개선, 서비스ㆍ중소기업 생산성 개선, 공공 부문 비효율성 축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구조개혁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구조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던 우리나라로서는 각론은 이미 알고 있어요. 구조개혁 비용은 단기에 발생하는 반면 그 효과는 장기에 걸쳐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소통과 추진력을 겸비한 높은 수준의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해요."
금융산업, 실물투자에서 자산운용으로 변화
저금리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금융산업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도성장기의 금융은 실물투자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었습니다. 저금리ㆍ저성장시대의 금융은 자산운용의 시대입니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자금의 만성적 초과수요로 금융기관의 역할이 한정된 가계저축을 어떻게 기업 부문으로 공급하느냐였지만 현재는 실물투자에 필요한 규모보다 더욱 많이 축적된 금융자산을 어떻게 운용할지가 금융의 주된 업무가 됐다는 얘기다.
권 전무는 "고도성장기의 금융은 전통적인 예대업무나 증권중개업만으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던 만큼 은행ㆍ보험ㆍ증권업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도 충분히 공생할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저금리와 낮은 잠재성장률로 금융권 간의 무한경쟁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컨대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용이해져 은행은 가계나 중소기업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는 제2금융권의 업무영역과도 일정 부분 겹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금융계가 할 수 있는 전략도 한계는 분명하다. 개별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자산운용업무를 강화하겠지만 국내는 이미 포화상태다. 과당경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반면 해외진출을 시도하지만 이 역시 원화 국제화가 돼 있지 않아 환율변동 위험에 노출 되는 등 한계는 명확하다.
권 전무는 "결국 금융계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고 외환시장의 안정 등 정책당국의 도움이 필요할 때"라면서 "시장규모에 비해 너무 많아진 금융사 간의 인수합병(M&A) 유도나 활발한 해외진출을 돕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식 불황 가능성 낮아
저금리의 고착화가 1980년대 이후의 일본식 불황을 야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다.
한국은 1997년에 이미 일본식 버블이 겪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권 전무는 "자산(일본은 주택, 한국은 원화)만 다를 뿐 금융자율화 과정에서 과도한 신용팽창, 자산가격의 급격한 상승 등으로 일본의 1980년대 후반과 한국의 1990년대 중반의 버블 형성은 거의 동일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가 한국의 버블 위험성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 물가안정 및 경상수지 흑자에 초점을 둔 거시정책, 금융건전성 규제 등으로 인해 자산가격 버블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경기가 본격 회복됨에도 불구하고 저금리가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시장에 팽배하면 새로운 형태의 자산가격 거품이 발생할 가능성은 있다고 조언했다. 권 전무는 "저금리 기조하에서는 금융건전성 규제, 회계 및 공시제도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고 통화정책도 물가ㆍ금융안정에 초점을 맞춰 중기적 관점에서 운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금리 현상을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물론 저금리가 유동성 함정을 불러일으킬 경우 부정의 효과는 커진다고 설명했다. 권 전무는 "돈의 공급은 풍부하지만 수요가 실물경제 부진과 금융위기에 대한 위험을 반영해 줄어든다면 자금의 초과 공급으로 시중금리는 하락해 유동성 함정에 빠진다"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ㆍ유럽, 그리고 1990년대 일본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돈을 풀어도 성장이 정체된다는 얘기다. 다만 권 전무는 "저금리 기조가 경제주체들의 차환비용을 절감시키고 자산가격 상승 기대를 높여주면 궁극적으로 자금흐름을 정상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거시·금융시장 분석 능력 탁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