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가격파괴의 함정

올해 초 동네에 치킨집이 새로 생겼다. 닭 한마리를 5,000원에 포장판매(테이크아웃)하는 매장이었다. 저녁 퇴근길에 무심코 길을 가다 식감을 자극하는 치킨 냄새에 발길을 멈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한번도 사먹은 적은 없다. 이 가게는 닭을 초벌해놓고 주문을 받은 뒤 또다시 튀겨서 파는데 두벌하는 그 몇 분을 서서 기다릴 만큼의 인내심이 기자에게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번은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배달을 해주면 안 되느냐”고 했다가 “닭 한마리에 5,000원 받고 배달까지 하면 나는 뭐 먹고 사느냐”는 퉁명스러운 대답을 들어야 했다. 얼마 전부터 퇴근길에 치킨 냄새가 나지 않았다. 치킨집이 문을 닫고 대신 그 자리에 이동통신 업체 대리점이 들어섰다. 대단지 아파트를 배후에 두고 있는 상권에다 대로변이라 입지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지난 2003년 이후 경기침체기로 접어들면서 외식시장에 가격파괴형 점포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다. 치킨 한마리를 5,000원에, 삼겹살 1인분을 3,500원에 파는 점포들이 ‘대나무가 쪼개지는’ 속도로 빠르게 늘었다. 1년여 만에 가맹점 수가 200~400개에 이르는 브랜드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줄을 서서 사먹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문을 닫는 가게들도 하나 둘씩 늘었다. 참살이(웰빙) 영향도 있었지만 소비자들의 구매 성향이 바뀌고 맛과 운영시스템 등에 차별화 요소나 경쟁력 없이 무조건 싸게 파는 가격파괴전략이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본격화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가격파괴형 쇠고기전문점이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가맹점주의 경우 극심한 경쟁에 내몰려야 한다. 자칫하면 가맹 본부만 배 불리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창업을 고려하고 있는 예비 창업자들이 아이템을 선택하기 전에 창업시장의 흐름과 가맹 본부의 이력, 그리고 경쟁력을 꼼꼼히 따져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한물 간’ 치킨 브랜드를 선택해 6개월 만에 수천만원의 투자금을 날린 치킨집 사장의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니 그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치킨 한마리를 사주지 못한 것이 못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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