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2,580만대.'
지난해 삼성전자와 LG전자, 팬택이 세계시장에 팔아치운 휴대폰 판매량이다. 국산 휴대폰의 고공행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국내 휴대폰 업계에 이 숫자의 의미는 유독 남다르다. 사상 최초로 국산 휴대폰이 세계 1위 휴대폰 제조사인 노키아를 제쳤기 때문이다.
'코리아 휴대폰'약진에는 '휴대폰 황제'노키아의 추락이 있었다. 노키아는 지난해 전년보다 3,590만대가 줄어든 4억1,710만대의 휴대폰을 파는 데 그쳤다. 한때 글로벌 휴대폰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시장점유율도 1년 만에 33.3%에서 27%로 줄어들었다. 국내 휴대폰 제조사의 한 임원은 "23년 동안 열심히 문을 두드린 결과 마침내 철옹성의 빗장이 열린 느낌"이라고 비유했다.
하지만 지난해 세계시장에서 1,000만대 이상의 휴대폰을 판매한 업체를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국내 업체는 3개에 불과하지만 중국 업체는 ZTEㆍ화웨이ㆍHTCㆍTCLㆍ레노버 등 5개에 달한다. 국내 휴대폰 업계가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사이 중국이라는 경쟁자가 새롭게 부상한 것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휴대폰 제조사인 ZTE는 지난해 7,810만대의 휴대폰을 판매해 처음으로 세계 휴대폰 시장 5위로 올라섰다. 세계 2위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도 판매량 5,380만대를 기록하며 6위를 기록했고 대만 업체인 HTC는 일찌감치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값싼 복제품을 의미했던 '산자이폰(산적폰)'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화웨이는 지난달 세계에서 가장 얇은 스마트폰을 공개했다. 전문가들은 부품 성능이 평준화되면서 향후 5년 이내에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사실상 사라질 것이라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한국 휴대폰은 모토로라, 노키아를 제친 데 이어 뒤늦게 뛰어든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숙제를 제때 해결하지 못하면 또다시 후발업체로 후퇴할 수 있다. 따라잡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