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입은 옷 색상 마음대로 바꾸는 시대 연다

탄소 소재 특성 조절할 수 있는 원천기술 개발

■ 이달의 과학기술자상-김상욱 KAIST 교수

탄소 소재 맞춤형으로 분자조립… 도핑 통한 물성변화까지 성공

의류 신소재 등 다방면 활용 가능

김상욱(왼쪽) KAIST 교수가 연구실에서 제자들에게 화학 이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연구재단

'아침마다 정신 없이 옷장을 뒤지지 않고 아무 스카프나 집어 든 다음 버튼 하나만 눌러 색깔을 마음대로 바꾸는 커리어우먼. 공식 행사가 있는 것을 깜빡하고 잘못된 옷을 입고 왔지만 옷 안의 입력창에 원하는 디자인을 입력해 변신하는 회사원.'

요즘 유행하는 공상 만화의 에피소드가 아니다. 조만간 우리가 마주할 세상에 관한 얘기다. 그것도 머릿속에서만 막연히 그린 미래가 아니라 우리도 모르는 사이 과학기술에 힘입어 조금씩 그 윤곽이 뚜렷해지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6월 과학기술자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상욱(43) KAIST(한국과학기술원)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만화 속 이야기를 현실로 만드는, 바로 그 과학기술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미래 소재로 주목 받는 탄소 소재의 특성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개발해 상을 수상하게 됐다. 탄소 소재 활용 가능성을 무궁무진하게 확장하면서 세상의 천지개벽 같은 변화를 앞당긴 연구다.

김 교수는 실제로 태양전지·배터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실험을 통해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적용할 경우 기존보다 훨씬 더 개선된 신소재를 얻을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또 2년 전부터는 KAIST에 설립된 라이프스타일이노베이션(LSI) 센터에서 코오롱과 함께 앞서 언급한 의류 신소재 개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의 연구결과는 올해 초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독일의 학술지 '어드밴스드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의 창간 25주년 기념 특집판에 초청 논문으로 게재됐다. 김 교수의 탄소 소재 연구가 집대성된 이 논문은 창간 특집호의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30년 전만 해도 미래에는 사람들 모두가 전화기를 들고 다닌다는 얘기가 공상과학 책에서나 나왔는데 이제 너무도 익숙한 현실이 됐다"며 "20~30년 뒤면 웨어러블 전자기기는 물론 아예 옷에 배터리와 센서가 장착돼 입은 사람 마음대로 디자인과 색상을 바꿀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웃으며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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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30대 때인 지난 2003년 삼성전자와 함께 반도체의 가장 기초적 원천기술인 회로 선폭을 줄이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 반도체 분야에서 이미 한 차례 혁명을 가져온 인물이다. 지금은 모든 반도체 회사가 그가 고안해낸 기술을 따르고 있다.

김 교수는 본래 고분자 분야에 대한 연구를 해오다 '분자조립이 가장 어려운 분야가 어디일까'라는 고민 끝에 약 8년 전부터 탄소 소재 연구에 뛰어들게 됐다. 탄소는 접합성이 매우 떨어지는 물질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탄소 소재는 가공성을 높일수록 그 고유의 특성을 많이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껏 수많은 연구자가 관련 이론을 제시했지만 실제 탄소 소재를 맞춤형으로 분자조립하고 질소ㆍ붕소 도핑을 통해 물성변화까지 성공한 것은 김 교수가 처음이다.

더욱이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탄소 소재의 반도체 분야 적용 가능성에만 관심을 쏟을 때 발상을 전환, 3년여간의 연구 끝에 그래핀 등 도체에도 관련 기술을 접목하는 데 성공했다.

김 교수는 "분자조립을 연구하다가 남들과 반대로 제일 연구하기 어려운 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며 "그런 영역에 도전해야 실패해도 남는 게 있다고 믿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이번 연구는 탄소 소재의 실용화를 생각하면 정말 필수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화학보다는 물리에 더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그러나 KAIST에 입학한 뒤 상대적으로 이론 분야가 강한 물리보다는 실험 분야가 강한 화학공학 쪽이 본인 적성에 더 맞다고 판단, 방향을 틀었다. 그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실험과 연구가 그야말로 체질인 연구인이다. 지금도 제자들에게 예술가처럼 창의적인 연구를 해볼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김 교수는 "연구자도 늘 새로운 것을 찾아 파고드는 영화감독 같은 사람과 기존에 이미 있는 것만 공부하는 영화 비평가 같은 사람으로 나뉜다"며 "우리가 개발도상국 때만 해도 연구인들이 선진국의 기술과 이론을 도입해 비평만 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영화감독 같은 학자가 돼 두려움 없이 미지의 영역에 도전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주어진 문제에만 매달려서는 발전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앞으로는 소재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올 것이므로 원천 소재 기술을 개발해 실용화까지 이루는 게 꿈"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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