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한나라, 진보이념도 가져가나

대선을 앞두고 정치지형이 참 묘하게 돌아간다. 여권에서는 이제 누가 어떻게 나서도 대선판에 명함 내밀기조차 힘든 상황이 됐고 야당은 승리를 전제로 누가 권력을 더 많이 가져가느냐를 놓고 갈등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전 총재가 한나라당 후보 자리를 가지고 다툴 때의 모습이 하도 험악해 사람들은 같은 당 맞냐는 투로 생각했다. 이회창 전 총재까지 출마를 선언하면서 보수진영 내에서 ‘누가 더 진짜 보수냐’를 놓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 정권 교체는 이미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것 같다. 일이 이렇게 된 데는 대선 과정에서 여권의 일방적인 후퇴 때문이다. 야당으로서는 최전선이 한가해진 것이다. 특히 이회창씨가 등장하면서 여권 후보가 3위로 밀려나는 현실은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니다. 여당으로서는 참으로 한심한 지지율이 아닐 수 없다. 참여정부로서는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그들이 취해온 정책이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당한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여권도 이합집산을 통해 참여정부의 색깔을 지워내려고 애는 썼지만 범여권이라는 용어는 그들도 즐겨 사용해왔다. 때문에 참여정부의 정책이나 이미지는 그대로 여권의 여러 후보들에게 들씌워져 있다. 여권 후보의 인기가 오르지 않고 고생을 한다는 얘기는 참여정부가 그만큼 인기가 없다는 얘기와 다름 아니다. 물론 예측이 불가능한 한국적 정치 상황에서 대선이 무려(?) 한달이 넘게 남은 상황이라 여권이 재집권에 성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작금의 형편을 살펴보면 여권이 승리한다는 것은 정책의 승리라기보다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야당 후보의 낙마에 따른 부수적 성공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리 아름다운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참여정부 사람들이 그토록 진보를 얘기해왔는데 그렇다면 야당이 득세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진보라는 이데올로기가 우리 국민에게 완전히 외면당하고 있다는 결론을 낼 수 있을까. 바로 이 점이 앞으로 한국 정치를 바라보면서 매우 흥미로운 관찰 포인트가 될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대선의 향방에 대한 관심도 관심이지만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ㆍ이회창 전 총재가 함께 만들어가는 한나라당의 분열과 합산의 과정에 더 큰 흥미를 느끼고 있다. 특히 이 전 총재가 이명박 후보가 보다 분명하게 ‘참보수’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출마의 변을 내세운 대목이 흥미롭다. 경선 과정에서는 자기들끼리 ‘좌파’ 운운하며 싸웠던 일도 있었다. 여권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진보’라는 이데올로기가 한나라당 안으로 흡수돼가는 이상야릇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이다. 만약의 경우지만 한나라당이 집권에 성공할 경우 계보정치에 따라 그들끼리 ‘극우’ ‘중도’ ‘좌파’의 이데올로기를 독점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사실 우리나라 보수진영은 5ㆍ16 군사정변을 기반으로 해서 등장했고 박정희ㆍ전두환 전 대통령 등 절대권력자의 지도하에 형성된 측면이 짙어 분열보다는 일사불란한 모습이었다. 그러던 것이 3당 합당을 통해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보수진영에 합류해 그 전에는 야당, 즉 신민당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계보정치가 보수당 안에서도 잉태됐던 사실은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나라당 안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계보정치가 하나의 틀로 완전히 자리를 잡을 기미를 보이고 있고 그것도 집권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을 만하다. 한나라당이 집권에 성공할 경우 그들끼리 ‘좌’와 ‘우’로 갈려 싸우는 과정에서 지금의 범여권이 설 자리가 갈수록 줄어드는 그런 상황이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여권의 위기는 대선에서의 패배가 아니라 이념적 뿌리의 소멸일 수도 있다. 범여권은 정체성의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한국 정치에 어떤 도움이 될지 또 어떤 해가 될지 지금 측량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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