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시장 발칵 뒤집은 그 여사장
[CEO&Story] 박지영 컴투스 대표컴퓨터는 내 사랑… 좋아서 하다보니 모바일 게임 시대 열었죠
이지성기자 engine@sed.co.kr
대학서도 컴퓨터 전공… 졸업 전 창업 MP3플레이어 개발 등 좌충우돌 끝에 1998년 모바일 게임 시장 뛰어들어'타이니팜' '홈런배틀' '타워디펜스' 등 앱스토어 1위 오른 게임만 10여종 국내 업계 첫 매출 1,000억 예고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구분하라는 것은 직업선택의 오랜 십계명이다.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삼고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해야 전반적으로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인생이 수월해진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면 가장 이상적이지만 거기에는 적지 않은 시련과 난관이 뒤따른다.
그런 면에서 박지영(39ㆍ사진) 컴투스 대표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확실히 구분하지 못한 경우다. 마냥 컴퓨터가 좋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고 컴퓨터로 밥벌이를 하겠다며 졸업도 하기 전에 회사를 창업했다. 그가 만든 회사는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지만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모바일게임 업체로 성장했다. 박 대표는 "마냥 좋아서 시작한 일이 어느 순간 직업이 돼 있었다"며 "지금도 창업할 때를 생각하면 아찔한 생각이 들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 오히려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정보기술(IT) 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모바일게임이었다. 스마트폰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면서 모바일게임은 단숨에 IT시장의 판도를 뒤흔드는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때와 장소에 구애되지 않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이 열린 덕분이다. 지금은 수많은 모바일게임이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박 대표는 국내 모바일게임시장을 연 선구자로 통한다.
"마산에서 태어나 밀양에서 유년기를 보냈는데 대학생이었던 언니가 방학을 맞아 내려왔어요. 언니 손 잡고 오락실에 갔다가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죠. 당시만 해도 오락실은 학생들의 유일한 문화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게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어요."
공부를 곧잘 했던 박 대표는 이후 울산에 있는 고등학교로 유학을 갔다. 책에서나 보던 컴퓨터는 학교에 컴퓨터실이 생기면서 처음으로 접했다. 컴퓨터를 알아갈수록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썽 한번 안 피웠던 막내딸은 대학 원서를 쓸 무렵 부모님과 충돌했다.
"부모님은 의대나 약대에 진학하기를 원했지만 컴퓨터를 더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을 누르지는 못하겠더라고요. 부모님을 설득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지만 막연하게 장래가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산학을 전공하던 언니의 영향도 컸던 것 같아요."
고려대 컴퓨터학과에 진학한 박 대표는 4학년이었던 지난 1996년 컴투스를 창업했다. 과 동기이자 훗날 남편이 된 이영일 부사장과 기숙사 친구까지 3명이 창업 멤버다. 회사를 만드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사업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당시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하면 대기업 개발자로 많이 취직했어요. IT산업이 막 태동기여서 시장 수요도 많은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생각하니 재미있는 것을 한번 해보자는 욕심이 들었어요. 창업했다가 안 되면 그때 취업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에서였죠."
회사 이름을 컴투스라 짓고 사무실은 학교 근처 옥탑방으로 정했다. 그러나 창업은 했지만 정작 무엇을 할지를 정하지 않은 탓에 매일매일이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일단 차세대 음악 규격인 MP3가 유망하다는 소식에 MP3플레이어 개발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준비가 돼 있지 않은 탓에 제품을 내놓지도 못하고 빚만 졌다. 그러다 PC통신이 인기를 끄는 것에 주목하고 사업방향을 다시 틀었다. 당시 박 대표가 선보인 것은 PC통신에 컴퓨터 부품 정보를 제공하는 일종의 콘텐츠 서비스였다. 각종 컴퓨터 부품 가격과 정보를 유료로 판매하는 것이었지만 운영비와 수수료를 빼고 나면 겨우 이익이 남았다.
"콘텐츠 자체는 아주 경쟁력이 있었지만 수익은 거의 없었습니다. 부모님한테 빌린 창업자금 500만원까지 바닥이 나는 바람에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웠어요. 그러다가 휴대폰을 이용한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새롭게 등장했고 게임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픽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아도 아이디어만 잘 짜내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죠."
박 대표는 직접 개발한 게임을 들고 이동통신사를 찾아갔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1998년의 일이다. 하지만 이내 또 다른 장벽을 만났다. 게임 자체는 가능성을 인정받았지만 신생업체의 게임을 선뜻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결국 2년 동안 무료로 게임을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하고 모바일게임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국내 5대 통신사에 모두 게임을 공급했다는 자신감은 훗날 가장 큰 경쟁력이 됐다.
"휴대폰으로 무선인터넷을 이용하는 세상이 오는 걸 보고 휴대폰의 가능성에 대해 주목했어요. 결국은 휴대폰이 하나의 게임기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모바일게임에 컴투스의 미래를 걸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사업이 조금 안정되면서 국내시장보다는 해외진출을 본격적으로 준비했습니다."
박 대표의 예상이 들어맞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8년 애플이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인 앱스토어를 선보인 것이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대폰 제조사가 콘텐츠 서비스를 직접 운영하는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박 대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앱스토어는 그동안 컴투스가 고민했던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줬습니다. 우선 단일 운영체제(OS)에 하나의 단말기만 지원하면 되기 때문에 개발시간이 훨씬 줄어든 것이죠. 또 앱스토어가 대신 홍보를 해주기 때문에 직접 영업전선에 뛰어들 필요도 없어졌고요. 무엇보다 앱스토어에 등록만 하면 해외시장에 곧장 진출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박 대표는 앱스토어가 등장하자마자 기존 해외담당 인력을 모두 아이폰으로 전환하고 게임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로 나온 '페노아 전기' '크레이지 핫도그'는 국산 게임 최초로 앱스토어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컴투스는 스마트폰 열풍과 함께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갔다. 지금까지 내놓은 모바일게임은 50종이 넘고 '타이니팜' '홈런배틀' '타워디펜스' '슬라이스잇' 등 앱스토어 1위에 이름을 올린 게임도 10종을 웃돈다. 2년 전 362억원이었던 매출도 지난해 700억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돼 국내 모바일게임 업체 최초로 매출 1,000억원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창업 당시 3명이었던 직원도 500명으로 불어났다.
박 대표는 컴투스의 성공비결로 곁눈질을 하지 않은 우직함을 꼽았다. 사업 초기에는 무수한 시행착오 탓에 여러 분야를 건드려보게 되지만 일정 궤도에 오른 뒤에는 꾸준히 한우물을 파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조건 돈을 많이 버는 소위 대박 게임을 만드는 것보다 '컴투스 게임이라면 한번 해보고 싶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목표"라는 그는 "요즘 신입사원을 뽑으면 어린 시절 컴투스 게임을 해봤다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 해외서 명성 떨치는 박대표타임 '세계 최고 IT 전문가 14인' 선정 국내서도 벤처기업대상 단골 수상자로박지영 컴투스 대표는 국내 정보기술(IT) 업계의 대표적인 여성 벤처기업가로 꼽힌다. 공동 창업자이자 남편인 이영일 부사장이 같은 회사에 있지만 창업 이후 박 대표는 사업 전반을 총괄하고 이 부사장은 게임 개발과 해외 영업을 전담하고 있다. 그는 "사업 초기에는 의사결정을 놓고 충돌이 있었지만 이제는 업무가 확실히 구분되면서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모바일게임시장에 막 진출한 지난 2003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 IT 전문가 14인'에 선정된 이래 영국 모바일 전문매체 ME로부터는 세 번이나 '세계 최고경영인 50인'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에서도 벤처기업대상과 인터넷대상을 여러 번 받았고 2009년에는 남녀고용평등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모바일게임시장이지만 박 대표는 대외활동에도 왕성하게 나서고 있다. 2009년 이후 차세대융합콘텐츠산업협회와 한국무선인터넷산업연합회 부회장을 맡고 있고 지난해부터는 대통령 직속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민간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여성 기업인의 사회적 참여가 늘어나야 산업은 물론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생각에서다.
박 대표는 요즘도 창업을 꿈꾸는 후배를 만나면 리더십 못지 않게 협동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리더가 되기 위한 개인의 능력도 필요하지만 각 구성원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창업 이후 20년 가까이 회사를 운영해보니 결코 회사는 혼자서 이끌어갈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며 "참신한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성공적인 창업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 박지영 대표는
▲1975년 경남 마산
▲1997년 고려대 컴퓨터학과 졸업
▲1998년~ 컴투스 설립 및 대표이사
▲2003년 타임 선정 '세계 IT 전문가 14인'
▲2003년 소프트웨어산업발전 국무총리표창 수상
▲2007년 문화산업발전 문화관광부장관표창 수상
▲2012년 대한민국인터넷대상 대통령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