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현지시간)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오는 23일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내놓은 일성이다. 이 자리에서는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연준의 독립성을 한 단계 끌어올린 폴 볼커 전 의장, 미국의 골디락스(저물가 속 경기호황) 경제를 이끌며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렸던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 재닛 옐런 차기 의장 등 전·현직 수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화려한 참석자들의 면면 못지않게 버냉키 의장의 작심한 듯한 발언에도 시선이 집중됐다. 내년 1월 말 물러나는 버냉키 의장은 "앞으로도 연준은 정치권의 외압을 고려하지 않고 목표에 맞게 필요한 결단을 내릴 것"이라며 "연준의 궁극적인 임무는 미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은행 스트레스테스트 결과 발표 등을 통해 통화정책의 방향을 알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연준 투명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은행 독립성의 중요성과 시장과의 소통을 또 한번 강조한 셈이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연준의 위기감도 보여주고 있다. 연준은 별다른 후유증 없이 출구전략을 시행해야 하고 공화당 등 정치권의 연준 개혁 움직임을 돌파해야 하는 양대 난제를 안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연준은 100주년이라는 상징성에 걸맞지 않게 아직 대대적인 기념행사 없이 조용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연준은 홈페이지에 '연준 역사'를 게재했을 뿐 연준 본부나 각 지역 연준 차원의 계획은 나중에 발표할 방침이다. 이는 연준의 실제 업무가 지난 1914년 시작된 탓도 있지만 연준이 처한 현재의 입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연준은 1907년 금융위기의 대책 가운데 하나로 1913년 12월23일 연준법이 통과되면서 시작됐다. 1914년 8월10일 찰스 함린 초대 의장과 이사들이 취임했고 그해 11월16일 12개 지역 연방은행들이 업무를 개시했다.
이후 연준은 숱한 우여곡절 끝에 여러 차례 금융위기의 소방수 역할을 해오며 '글로벌 중앙은행'으로서 위상을 다져왔다. 하지만 새로운 100년의 시작과 더불어 연준은 시험대에 올랐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2008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천문학적인 규모로 돈을 푼 게 점점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양적완화 조치로 월가 투기꾼들의 배만 불리고 거품붕괴 우려가 커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출구전략이라는 새로운 미지의 영역에 들어갔다가 금융시장 불안, 경기 회복세 둔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연준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도이체방크는 최근 보고서에서 "사실 연준의 양적완화로 미국 등 선진국의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정크본드 등 모든 자산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오른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미 공화당은 내년부터 연준에 사상 유례없는 메스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미 하원의 젭 헨사링(공화당·텍사스) 금융서비스위원회 의장은 최근 "연준의 구조, 권한 등에 대해 역사상 가장 혹독한 조사와 감독을 실시한 뒤 대체 법률 제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 공화당은 2008년 연준의 AIG, 베어스턴스 구제금융이 자유시장원리에 어긋나고 양적완화 탓에 재정긴축의 효과가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사라 바인더 선임 연구원은 "공화당은 연준의 구조개혁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며 "연준의 조기 출구전략에 대한 압력도 병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그린스펀 전 의장과 버냉키 현 의장의 규제 완화가 금융위기를 불렀다는 일각의 반감도 연준에는 부담이다. 실제 마켓워치가 생존 중인 3명의 연준 의장 가운데 누가 가장 뛰어났는지 묻는 온라인 질문에 '누구든 관심 없고 연준을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17일 오전1시 현재 23%에 달했다. 3명 가운데에서는 볼커 의장이 54%를 얻어 1위를 차지했고 버냉키 의장과 그린스펀 전 의장은 각각 31%, 15%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