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9월26일] 중·영 홍콩 반환협정 가조인

박민수 <편집위원>

흑묘백묘는 ‘흑묘백묘 주노서 취시호묘(黑猫白猫 住老鼠 就是好猫)의 줄임말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이다. 덩샤오핑이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와 주장하면서 취업 시험 문제에 나올 정도로 유명해진 말이다. 중국인만큼 실리를 확실하게 챙기는 민족도 없다. 지금은 원위치됐지만 홍콩에 대해 중국이 취한 지난 100년간의 태도도 철저히 실리적이었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몇 차례의 불평등조약 끝에 중국은 홍콩을 영국의 조차지로 내줘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역전된 역학관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홍콩을 무력으로 탈환하려는 시도를 하지않았다. 1950~1960년대 중ㆍ소 분쟁 당시 소련으로부터 식민지를 그대로 방치한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식민지 해방 따위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당시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던 중국으로서는 홍콩이라는 외화획득 창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982년 6월 홍콩의 장래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해 9월 중국을 방문한 마거릿 대처 영국 수상은 홍콩의 안정과 번영을 유지하는 공통 목적에 기반해 양국이 교섭할 것에 동의했다. 1984년 9월26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장, 영국과 중국은 1997년까지 홍콩을 중국에 반환한다는 내용의 역사적인 협정에 가조인했다 2년간에 걸쳐 줄다리기를 벌인 끝에 홍콩 반환협정이 극적으로 타결되는 순간이었다. 그해 12월19일 정식조인이 이뤄졌고 1985년 5월에 비준서가 교환됨으로써 영국은 1997년 7월1일을 기해 홍콩의 주권을 중국에 넘겼다. 홍콩은 영국의 통치 아래 있으면서도 경제적 발전을 거듭, 반환 직전에는 국민총생산(GNP)가 종주국인 영국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중국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긴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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