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04> '국정감사 유감'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마태 효과’라는 말을 사용해 지성사에 길이 이름을 남겼다. 마태 효과라는 개념이 탄생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신약성서의 마태복음 속에는 하인 세 명에게 돈을 남기고 여행을 떠나는 주인이 등장한다. 하루는 주인이 세 명의 하인에게 각각 다섯 냥, 세 냥, 한 냥씩의 돈을 남겨 주고, 그것을 잘 관리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하인들의 대처법이 각각 달랐다. 다섯 냥과 세 냥을 받은 하인들은 그 돈으로 장사를 하여 이문을 남겨 원금에서 더 많은 부를 쌓았다. 반면 한 냥을 받은 다른 하인은 그 돈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땅속에 숨겨 두었다. 어느 날,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은 하인들의 금전출납 상태를 점검했다. 다섯 냥과 세 냥을 주었던 하인들은 배가 되는 이익으로 주인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반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인은 미움을 샀다. 주인은 그가 노느라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재산을 증식할 만한 기회를 날려 버린 게으름뱅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화가 난 주인은 하인이 갖고 있는 마지막 한 냥을 빼앗아 다섯 냥을 열 냥으로 만든 하인에게 넘겨 주었다. 일종의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사실 이 마태복음의 비유는 형평성이란 관점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이 지니는 부정적인 측면을 여실히 드러내는 나쁜 사례로 종종 인용되는 것 또한 같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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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끔 이렇게 부정적인 면만 부각되는 ‘승자 독식 상황’이 필요해 보이는 경우가 있다. 바로 정치권이다. 우리나라는 정치인이 되기까지 진입 장벽은 상당히 높다. 특히 국회의원이 되려면 나름의 분야 전문성 못지않게 적정 수준 이상의 재력과 네트워크를 가져야만 한다는 게 정설이다. 세계 어느 나라나 엘리트가 의회에 참여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그 정도가 심하다. 얼핏 보면 인적 자원의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어 있다고 느껴질 법도 하다. 그러나 자신이 원래 속했던 직업집단 안에서는 상당한 식견과 능력을 유지하던 사람이 정치권에만 들어가면 답답한 수준으로 전락하고 마는 상황이 자주 보인다. 특히 계파 없이 정치 시장에서 생존이 불가능한 정당 구조의 특성상 자신의 본래 철학과 다른 ‘쇼잉’(showing)을 해야 할 때가 많다는 사실이 몇몇 정치인의 인격까지 초라하게 만든다. 인간은 학습하는 존재다. 제아무리 고결한 본성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반복해서 잘못된 행위를 하다 보면 인간성도 변하지 않을까.

바로 지금이 현역 정치인들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나는 국정감사 기간이다. 해마다 ‘버럭’ 화를 내며 증인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는 사람, 혹시라도 ‘입바른 말’을 하면 ‘의회 민주주의를 존중하지 않는다’며 찍어누르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콘텐츠가 살아 있는 질문보다는 감정과 악만이 남은 질의로 주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국회의원이 왜 이리 많을까. 이런 정치인들은 모두 퇴출 대상이다. 아무리 국정감사가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존재감을 드러낼 절호의 기회라도 그렇지 ‘막장’으로까지 치달아선 곤란하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법과 정책으로 만들어지는 국회의원 아닌가. 아찔하다. 아무리 ‘보여주기’가 중요하다지만 질문을 위한 질문만 쏟아내고, 정작 중요한 내용 없이 윽박지르는 모습은 어떤 이유를 들더라도 정당화할 수 없다.

국회의원은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하인에 비유하자면 처음부터 다섯 냥 받은 인물이다. 적어도 본인이 몸담고 있던 분야에서는 그 능력을 충분히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다섯 냥으로 시작한 정치를 열 냥으로 불릴지 결국 다 까먹고 쫓겨나게 될지는 철저히 본인의 능력에 달렸다. 자극적인 말만 쏟아내는 삼류 배우 같은 의원들에게 더 이상 기회를 주는 건 무의미하다. 다음 총선에서 제대로 된 심판이 이뤄져야 국회가 깨끗해지고 정치가 발전할 수 있다. 주어졌던 것 모두 몰수하고 제대로 그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에게 몰아주는 승자 독식 구조가 정치권에서는 독이 아니라 약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그때쯤이면 ‘쇼 같은 국정감사’도 완전히 막 내릴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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