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10월 26일] 메디슨과 벤처신화

얼마 전 어느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모이는 자리에 참석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기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다들 경영현장에서 겪는 나름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창업 4년째를 맞는다는 한 정보기술(IT) 벤처기업 사장의 말에는 참석자들이 모두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회사가 업력이 쌓이면서 이런 저런 채널로 인력을 충원하다 보니 초기의 창업정신이 점점 퇴색되는 듯하다"면서 "나를 포함해 3명의 창업멤버들이 라면박스에서 밤을 지새며 열의를 불태우던 시절이 못내 그립기만 하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내부의 성공 함정에 빠진 이들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많은 벤처기업 경영자들은 세월이 지나고 회사 덩치가 커지면서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성공함정에 빠져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사실 벤처기업을 다녀보면 창업 초기 어려울 때만 해도 당차고 도전과 열정으로 가득 찼던 회사 분위기가 어느새 퇴색되고 왠지 모르게 느슨해졌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다.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혜성처럼 일어났다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버린 것은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무리한 확장에 열을 올리거나 경영자가 한눈을 팔 때라는 연구결과도 많이 나와 있다. 오죽하면 벤처업계에서는 일찍부터 '벤처는 벤처다워야 한다'는 말이 정설처럼 굳어져 있을까 싶다. 이런 점에서 최근 대기업들의 인수전이 불붙고 있는 메디슨의 극적인 회생드라마를 들여다 보면 우리에게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때 벤처신화의 대명사이자 1세대 벤처의 대표주자로 각광받던 메디슨은 초음파 진단기 국산개발로 승승장구하다 2000년대 초 경영부실의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갖은 우여곡절 끝에 투자회사로 넘어가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메디슨이 10여년 만에 다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은 시장 트렌드의 변화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갖은 풍상을 겪으면서도 직원의 80%가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는 직원들의 높은 로열티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메디슨은 벤처사관학교로 불릴 만큼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해 지금도 벤처업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직원들은 불투명한 미래를 무릅쓰고 오직 자존심 하나로 똘똘 뭉쳐 어려운 시절을 애써 이겨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매각과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벤처기업인들이 씁쓸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벤처기업을 잘 키워 대기업 등에 인수되는 것이 바람직한 모델이라는 것은 공감하면서도 창업자가 회사를 떠난 상태에서 벤처의 간판주자가 결국 대기업의 품으로 안겨야 하는 한국 벤처산업의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라는 얘기다. 한때 대기업 흉내를 낸다고 비난 받던 메디슨의 종착점이 대기업 계열사일 수 있다는 전망도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는 최근 펴낸 '스몰 자이언츠'라는 책에서 우리 사회의 강소기업들을 만나면서 독특한 개성과 능력을 지닌 젊은 기업인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 교수는 조선ㆍ반도체ㆍ자동차산업을 맨손으로 일궈낸 선배들의 기업가정신을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다양한 개성을 지닌 젊은 후배들이 이어가고 있다며 강소기업들의 진취적인 모습은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역동적이고 활발하다고 평가했다. 역동적 강소기업 면모 이어가길 최근 벤처창업이 단연 활기를 보이며 '제2의 벤처붐'이 일고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벤처투자 조성규모가 1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는가 하면 대형 기관투자가들도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유망기업 발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실험실이나 연구실에 몸담은 기술인력들이 창업에 나서는 사례가 많아 과거와 달리 제조벤처 중심의 건전한 벤처생태계가 조성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때 '벤처는 사기'라고 폄하하던 사회 일반의 인식도 많이 달라진 듯하다. 사회 전반적으로 일자리 창출이나 신성장동력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면서 벤처가 다시 한국경제의 주역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공감대도 갈수록 확산되는 분위기다. 다들 21세기는 벤처의 시대라고 말하곤 한다. 한국의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그들만의 강점과 도전정신을 무기로 글로벌 시장을 주름잡는 그런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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