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用美 좀 하면 어떨까요

중국의 최고지도자들이 사자성어(四字成語) 형식으로 제시하는 국가발전 전략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들고는 한다.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춰 밖으로 비치지 않도록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말로 미국 등 강대국과의 마찰을 피하며 때가 될 때까지 국력을 키우자는 의미다. 덩샤오핑(登小平)이 지난 80년대에 설파한 이 전략은 ‘흑묘백묘’(黑猫白猫)론과 함께 장쩌민(江澤民) 시대에 이르기까지 20년 이상 대내외 정책의 줄기를 이뤘다. 경제는 발전하고 힘은 커졌다. 중국은 자기네가 세상의 중심(中華思想)이라고 여겼던 데서 보듯 자존심이 센 민족이다. 그런 그들이 허리를 굽히고 이데올로기도 무시했다. 잠깐 숙이고 영원히 강하게 존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금 후진타오(胡錦濤)를 비롯한 중국의 4세대 지도부는 이렇게 큰소리를 친다. ‘화평굴기(和平堀起), 유소작위(有所作爲), 부국강병(富國强兵)’. 평화적으로 중국의 존재를 우뚝 세우되, 국제정세에 적극 개입해 중국의 역할과 국익을 확대하며, 경제와 군사력을 튼튼히 하겠다고 말이다. 이제 힘이 생겼으니 제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이다. 자존심 누르고 때 기다린 중국 전시작전통제권 논란이 뜨겁다. 환수, 단독행사, 이양 등 보는 쪽에 따라 용어부터 엇갈린다. 정부는 주권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며 당장 환수해도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다. 역대 국방장관 등 반대론자들은 한미동맹 와해와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져 안보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라며 펄쩍 뛴다. 환수론자들은 미국도 해외주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차원에서 조기이양을 바란다며 본질을 제대로 보라고 반박한다. 모두가 전문가들이니 누가 옳은지 판단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실마리는 의외로 청와대 비서실의 ‘전시작통권 환수문제의 이해’ 자료집에 있다. ‘작통권은 자주국방의 핵심이다. 자주국방은 주권국가의 꽃이고 핵심이다. 실리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면 어느 정도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꼭 갖춰야 할 국가의 기본이다’. 그렇다. 작통권을 실리ㆍ경제적 관점에서 따져보는 것이다. 작통권 환수를 위해서는 그럴 역량이 갖춰져야 한다. 거기에는 비용이 따른다. 자주국방을 위해 오는 2020년을 목표로 추진하는 국방개혁에는 621조원이 필요하다. 2011년까지의 1단계에만 151조원이 들어간다. 국방부 일정(2012년 환수)대로라면 이게 작통권 환수비용인 셈이다. 관건은 국가재정이 이를 ‘큰 문제 없이’ 감당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안보의 중요성은 두말할 일이 아니지만 그게 나랏일의 전부는 아니다. 일자리 창출, 저출산 고령화 대책 등 경제활성화와 성장잠재력 확충, 공교육 회생, 보건복지제도 확충, 양극화 해소, 지역균형발전, 농어촌지원 등 급한 일들이 많다. 하나같이 큰돈이 들어가는 것이지만 조달방안이 여의치 않다. 세금을 더 걷거나 빚을 내야하는데 둘다 쉽지 않은 실정이다. 작통권, 실리·경제적 접근을 예산처에 따르면 2010년까지 4년간 재정적자가 9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안보강화에 뾰족한 수단이 없다면 다른 예산을 줄이든지 빚을 내서라도 하는 게 옳다. 그러나 다른 방편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수단은 분명히 있다. 미국의 막강한 전력을 우산 삼아 시간을 버는 것이다. 미국을 이용(用美)하자는 얘기다. 그러면서 다른 분야에 전력투구해 힘을 기르고 그 힘을 바탕으로 우뚝 서는 것이다. 경제활성화와 사회안정은 자주국방 여력을 훨씬 쉽게 만들 것이다. 결국 작통권은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는 시간의 문제, 또 자존심이냐 실리냐 선택의 문제다. 중국은 유소작위를 외치면서도 여전히 미국과의 마찰 회피 쪽에 중심을 두고 있다. 아직 때가 완전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크고 강한 나라다. ‘반미 좀 하면 어때’보다는 ‘용미 좀 하면 어때’가 지금 우리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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