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6월 19일] <1727> 막시밀리언 1세


1867년 6월19일 오전6시40분, 멕시코 중부 케레타로시 종의 언덕. 멕시코 황제 막시밀리언 1세가 총살 당했다. 유럽의 군주들과 문호 빅토르 위고,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 가리발디까지 나섰던 구명운동은 무위에 그쳤다.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는 이 소식을 듣고 그림 '막시밀리언의 처형'을 남겼다. 막시밀리언의 죄목은 국가반역죄. 프랑스 침략군이 옹립한 황제였으니 반역으로 몰릴 만했다. 오스트리아 황실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20대 초반부터 해군사령관으로 근무했던 그가 제위에 오른 것은 1864년 4월.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멕시코공화국을 침략(1861년)한 프랑스에 의해 제정(帝政)이 성립되고 교회의 지지 속에 첫번째 황제로 추대됐다. 막시밀리언 1세는 즉위 직후부터 사면초가에 빠졌다. '인디오의 보호자'임을 자처하며 토지개혁을 시행해 교회와 대농장주들의 반발을 샀다. 북부에서 저항하는 후아레스 전 대통령에게 총리 자리를 권유하며 화합을 꾀했지만 내전은 갈수록 심해졌다. 미국도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남북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프랑스에 '미주에 대한 간섭 중단, 군대 철수'를 요구하며 후아레스 군대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렸다. 결정적으로 1867년 초 프랑스군이 프로이센과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멕시코를 떠나자 공화파 군대가 밀려들었다. 유럽으로 돌아오라는 제의를 거절한 채 마지막 병력을 모아 저항했던 황제는 끝내 포로로 잡혀 처형 당했다. 최후의 순간에도 의연한 모습을 보인 35세의 황제는 멕시코 국민들에게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황제'로 기억되고 있다. 막시밀리안의 비운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좌우되는 약소국의 비애를 그대로 말해준다. 진실보다는 힘과 이익의 논리가 우선되는 국제역학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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