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엽수림을 지나는 기차를 쫓는 거대한 말, 그리고 눈 덮인 산, 누군가 금방 자고 일어났는지 정돈되지 않은 침대시트와 바람에 흔들리는 넓은 커튼. 현실과 초현실을 동시에 드러내는 사실적 화면의 작품으로 독창적이고 서정적인 하이퍼리얼리즘을 펼쳐온 이석주씨의 작품에서 만날 수 있는 소재들이다. 그가 4년여만에 개인전을 갖는다. 서울 청담동 박영덕화랑에서 지난 24일 시작된 이번 전시는 90년대 작품이 그러했듯 전원적인 분위기는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어두운 톤의 색조로 내적인 갈등과 고독을 표현했던 이전 작품과는 달리 따사로운 갈색조의 화면과 부유하는 꽃잎들로 훈훈한 사람의 온기가 베어 있다. 여기에 사물이나 상황을 비교 대립해 현실과 상상을 이어주는 그림들로 생명과 삶에 대한 작가의 관조적 시선도 엿 볼 수 있다. 크고 작은 시계와 말들이 등장하는 이번 전시에는 예전과 달리 그 숫자가 많아졌다. 말들의 표정도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슬픈 표정에서 암수 말들의 애정을 표현한 작품까지 다양하다. 그의 그림에서 흔치 않은 사람도 있다. 긴 노랑머리를 두갈래로 딴 소녀의 뒷 모습은 그의 예전작품에서 만날 수 없는 모습. 모델은 작가 부인인데, 작품을 위해 가발을 썼다. “청평작업실로 내려간 지 8년, 그만큼 작품의 변화도 많습니다. 마음의 여유와 함께 전에 안보였던 꽃들과 사람들이 보입니다. 오래 전부터 사람도 그려보고 싶었는데, 요즘 그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번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작업의 변화는 소재의 다양화와 함께 작품의 재료다. 차가운 공업원료의 느낌을 전하는 아크릴에서 끈적끈적한 유화로 바꾸었다. 이 때문에 말과 사람들의 표정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석주씨의 말 그림을 좋아하는 콜렉터라면 놓쳐서는 안 될 듯 싶다. 전시는 4월2일까지 계속된다. (02)544-84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