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 인수자인 INI스틸ㆍ현대하이스코 컨소시엄이 8,771억원의 인수대금을 벌써 보름 전에 완납했는데도 채권단 사이의 우발채무 분담에 대한 이견으로 공장을 넘겨받지 못해 정상가동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인수자가 손해를 보는 것도 문제지만 지역경제와 국가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상황이 이렇게 꼬인 것은 지난해 한보철강 인수계약을 체결했으나 매각대금을 제때 내지 못해 인수자격을 박탈당했던 AK캐피탈측의 소송제기 때문이다. AK측은 지난 6월 국제상업회의소 산하 국제중재법원에 4억5,000만달러의 손배 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데 이어 지난 8일에는 충남 서산지원에 한보철강 매각대금 등에 대한 가압류 신청을 했다.
이에 앞서 AK측의 한 주주는 미국 뉴욕주 법원에 AK캐피탈과 한보철강의 최대채권자인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를 상대로 15억5,000만달러의 소송을 냈다. 채권단은 이에 대비해 매각대금 중 3,800억여원을 유보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그러나 KAMCO는 소송에서 질 경우 이것만으로 부족할 수 있다며 추가손실에 대한 채권단의 분담을 명확히 하자고 주장하고 나섰고 다른 채권자들이 이에 응하지 않아 막판에 난항을 겪고있는 것이다. 패소 가능성이 크지 않고 설혹 패소한다 해도 십중팔구는 부분 패소일 것이기 때문에 유보금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다른 채권자들의 주장이다.
KAMCO의 입장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만일 유보금 이상의 배상 판결이 내려질 경우 그 부담을 고스란히 자신들이 져야 하는 만큼 위험관리 대책 마련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한번에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하고 인수자가 공장을 넘겨받아야 될 시점에서야 뒤늦게 추가분담 문제를 들고나온 것은 사전에 치밀한 준비와 분석이 없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으로 명백한 잘못이다.
특히 KAMCO는 자금조달 능력이 의심되는 AK캐피탈과 협상하느라 1년여를 허송세월 했고 결과적으로 지금의 문제를 야기한 전과가 있지 않은가.
문제는 이 같은 채권단의 이견으로 공장 정상화가 늦어지는 등 부작용이 만만찮다는 것이다. INI스틸은 한보철강에 3,000명의 인력을 새로 투입하고 앞으로 노후설비 교체 및 신규 설비 도입 등에 모두 2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공장인수가 늦어지면 그만큼 인력투입과 투자도 지연될 수밖에 없고 가뜩이나 불안한 철강재 수급난을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지역민 고용이나 국가경제에도 좋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INI스틸도 공장가동이 오래 지연될 경우 월 500억원의 매출 손실을 입게 된다고 한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니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채권단은 내일 다시 이해관계인 집회를 열어 한보철강 정리계획안에 대한 동의여부를 결정할 예정인데 여기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